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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Aug 22. 2023

영국에서 향수병 극복하기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와 같은 유학생들에게, 향수병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종의 고질병이다. 특히 그 전까지 자취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더욱 심하게 찾아올 것이다. 내가 그 전까지 살던 곳을 얼마나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느꼈는가에 상관 없이, 사람은 연고도 없는 곳에 홀로 떨어지게 되면 외로움을 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8-9월의 인천에서는 유학생과 동행하는 보호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게 정말 10대든,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는 20대 새내기든 간에 말이다. 물론 여러 개의 캐리어 내지는 이민가방은 덤이다. 나는 겁도 없이 처음 영국에 입국할 때부터 홀홀단신으로 왔지만, 이렇게 외국 생활의 시작을 부모가 동행해 주는 이들에게도 언젠가는 향수병을 겪는 시기가 오리라 생각한다.


외국 체류 경험이 있으신 아버지께서는 가끔, "유학을 시작하고 맞는 첫 한 두 달 안에 타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그곳에서의 삶이 힘들어질" 거라는 경고를 하곤 하셨다. 실제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한 학기만에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학생들의 수가 적지 않음을 감안하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 살아 보는 곳에서 두 달 안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결국 그곳의 안 좋은 점 위주로 눈에 보이게 될 테니.


다르게 이야기하면, 첫 2개월 안에 향수병을 극복할 만한 방안을 마련하기만 한다면 앞으로의 유학 생활도 문제 없을 것이란 희망적인 보증이 된다. 영국 대학들이 9월 말에 줄지어 개강하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영국에서의 첫 2개월은 1학년 1학기다. 그러면 첫 학기 안에 어떻게 영국에 스며들 수 있을까.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필자의 경험과 대학 동기들의 조언을 섞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바쁘게 살기

내가 썼던 방법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 모의유엔 대회(MUN)에 말그대로 미쳐 있었는데, 대학에 와서도 MUN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기어이 MUN 동아리에 들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나의 1학년을 MUN에 바치게 된다. 한 학기마다 두 개씩 1년간 4개의 대회에 출전했는데, 과제가 쏟아져 나오는 기간과 대회 일정이 겹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읽고 쓸 게 안 그래도 많은 과 특성상, 수업 진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다음 주에 읽어 가야 하는 자료들까지 미리 예습해 두어야 했다. MUN 대회는 주말을 잡아먹기 때문에 대회가 있는 주에는 리딩을 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심지어 1학년 마지막 대회였던 WorldMUN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주일간 열려서, 아예 학교 수업을 결석하고 대사단으로 참석해야 했다. 파리에서의 경험은 추후 다른 포스트로 올릴 예정이다)


MUN과 학업의 콜라보가 선사한 극한의 밸런스 게임을 함께 견디고 있는 동아리 친구들과는 당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목요일 오후 강의가 끝나자마자 달려가는 동아리방에서 대부분의 추억을 쌓았고, 우연찮게도 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혼자 한국인이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전공과 상관없이 다양한 1학년 동기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자, 금방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기였다. 


거기에 더해, 나는 파리에서 열린 그 MUN 대회 주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수업에 결석해 본 적이 없다. 때로는 양쪽 전공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세이 마감일의 향연에 반쯤 좀비가 된 채로 강의실에 가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은 갔다. 몇몇 과목은 실시간으로 강의를 녹화해 주기 때문에 원하면 강의는 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어떻게든 리딩에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을 교수님께 직접 여쭤보고 싶어 꼬박꼬박 학교에 왔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모든 과목의 출석 확인을 소규모 토론 세미나에서만 하기 때문에, 대규모 강의 참석은 필수가 아니다) 자연히 나처럼 어떻게든 학교에 오는 학생들과 자주 얼굴을 보게 됐고, 친한 친구도 이런 비슷한 성향 덕에 생겼다. 나중에는 지치고 힘들어도 과에서 친한 동기와 같이 학식을 먹고 함께 오후 수업에 가는 낙으로 학교에 왔다. 결국 몸을 계속 움직이고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니, 향수병에 매몰되어 있을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본격적인 여름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느라 바빠 부모님과의 연락도 잠시 소홀해졌을 정도.... (우리 과는 유독 여름 시험 기간에 1년 간의 진도를 한 번에 몰아놓은 시험으로 과목의 성취도를 평가한다)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 갖기

영국에도 (맛은 보장 못하지만) 한식당이 있다. 넷플릭스나 티빙 같은 OTT 서비스는 영국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서비스는 VPN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오히려 한국과의 시차가 이점으로 작용해 편안한 오후 시간에 한국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타임 등을 활용해 가족과 얼굴을 보고 소통하는 것도 가능하다. 향수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굳이 한국이 떠오르는 순간들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아무리 스스로 강인하다고 자부할지라도, 안타깝게도 무너지는 순간들이 한 번씩은 온다. 참고로 최소 한 번이며, 높은 확률로 울게 될 것이다. 놀랍게도 향수병은 학기 초에만 잠깐 왔다 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1학년 2학기 종강을 몇 주 앞둔 시기가 제일 힘들었다. 시험 기간이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아서다. 시험이 모두 끝나자마자 지락실 2 티저가 유튜브에 떠 있는 걸 보고는, 기숙사에 오자마자 곧바로 시즌 1 클립들을 몰아봤다.  그리고 케이팝 플리와 함께 잠에 들었다. 그제야 좀 살 거 같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향수병을 표출하고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걸 추천한다. 향수를 애써 부정하고 꾹꾹 누르다가 정신적으로 더 고통스러워지는 것보단, 그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고 다시 나아가는 게 더 낫다.



필요하다면 한인회 등 한인 커뮤니티 활용하기

사실 이 부분은 다소 호불호가 갈려서,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호이지만, 한국어로 소통함으로써 향수병을 해결하는 것도 나름 방법이기에 적어 본다. 


내가 영국에 와서 언어 때문에 제일 당황했던 건 의외로 성당이었다. 한인 성당을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학교 가는 길에 있는 현지 성당에 다니게 되었는데, 미사의 모든 전례가 영어로 진행되었다. 그나마 천주교는 전세계에서 동일한 전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어서 대강 이 부분이 어느 부분이겠거니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미사 중에 바쳐야 하는 기도들을 영어로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항상 한국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례했기에, 영어로 된 종교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한인 성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또한 익숙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1년 간 영국 성당을 다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인 교회 / 성당뿐만 아니라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한인회에 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한인회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SNS에는 우리 학교 1학년 한국인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이 있다. 확실히 한인회에 가입한 사람들끼리 더 돈독하고 친한 모양이다. 다만 한국인들끼리 친하게 지내다 보면 한국어로만 말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어울리는 친구들이 전부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학을 왔는데 굳이 여기에서 한국어 회화 실력만 더 늘릴 필요가 있나 싶어서 & 이렇게 좁은 사회일수록 더 소문이 빨리 퍼진다는 걸 알아서 일부러 들지 않았지만... 한국어로 소통함으로써 향수병을 달래고 싶다면 이만한 방법이 없다.



모쪼록 유학생으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향수와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심신이 모두 건강한 타지 생활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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