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지켜온 것이 너를 지킨대

by Anonymous
결혼식 상영회


결혼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반차를 써도 됐지만 충분한 손님맞이를 하고 싶어 연차를 썼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친구를 생각하며 꽃을 고르고, 그녀가 좋아하는 젤라또를 사러 갔다. 전 주에는 여분의 베개가 집에 없어서 본가에 다녀오며 베개를 챙겼다.


그리고 결혼한 그녀의 브라이덜 샤워, 결혼식에서 찍어둔 영상으로 40분 정도의 기념 영상을 만들어뒀다. 결혼 기념으로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 모든 감정적인 과정을 우리의 시선에서 담아 선물해 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호들갑이 한가득한, 우리 집에서 술 마시고 보는 <<결혼식 상영회>>를 준비했다.


분명 재미있는 자막을 마구 넣었는데.. 영상을 보다 눈물을 흘리는 친구를 보며 나는 신이 났다 ㅎㅅㅎ. 영상 업체를 못 불러서 아쉬웠는데 이게 더 좋다는 말에는 두배로 신이 났다. 친구가 고맙다고, 누가 이런 걸 해주냐고 했는데 문득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네가 우리 우정을 지키려고 진짜 오랜 시간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너를 지킬 수 있는 순간이 있는 거야


언젠가 내가 지킨 것이 나를 지킨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문장이 문득 친구를 보며 떠올랐던 것 같다. 사실, 친구로 우정을 나눈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대부분임에도 그녀는 자신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내게 가까운 우정을 보내줬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맘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술이 들어간 그녀들은 어릴 때는 친구들한테 표현하는 게 오글거렸는데 이제는 좋다, 고맙다, 서운하다 등 표현하는 게 더 좋다는 말을 했다. 그렇구나, 그렇게 변해가는구나, 친구들을 보며 깊어가는 우정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기분의 순간들은 인생에 유한한 횟수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에 꼭꼭 씹어서 느끼려고 했다. 아마 내 몸 곳곳이 오래오래 남을, 올해 중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루였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멋진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며 나의 노후가 꽤 잘 준비됐다는 생각을 했다. ㅋㅋ 앞으로도 잘 부타캐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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