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산책로

계단은 대신 올라가 줄 수 없다

by 몸을 쓰는 철학가

계단은 나의 작은 산책로다. 매일 오가는 길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있어도 굳이 계단을 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적당한 힘을 실어 계단을 누르듯 밟는 순간, 마치 발판이 나를 살짝 밀어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탄력에 힘입어 단숨에 몇 계단을 오르고 나면, 짧은 순간에도 땀이 맺히고 숨이 가빠진다. 정상에 도달해 잠시 가뿐 숨을 몰아쉬면 묘한 뿌듯함까지 밀려온다.


어느 지하철 역 계단에는 걸음마다 좋은 글귀들이 적혀 있다. 그 문구들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생각이 자연스레 깊어져, 그 짧은 발걸음도 작은 사색의 시간이 된다.


계단은 욕심을 부릴 수 없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수평과 수직이 반복되는 선들의 리듬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묵직해지지만, 그 끝에는 늘 '닿을 곳'이라는 보상이 있다. 그렇다고 건너뛰어 올라갈 수는 없다.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많아야 두 계단, 과욕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다.


계단 앞에 서면 자연스레 호흡이 고요해진다. 끝자락의 경계선은 발끝에 미묘한 긴장을 주며 나를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든다. 위태로운 선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뒤로도 치우치지 않는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몇 달 전, 그 균형의 의미를 나는 더 깊게 알게 되었다.


항암 치료를 받던 시기, 나는 계단을 오르며 스스로의 건재함을 확인했다.

힘이 있는 날은 두 계단씩 올라 단숨에 6층 병실에 도달했고, 약 기운에 몸이 무거운 날은 한 계단조차 난간을 붙잡고 가쁜 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올라갔다. 계단은 나의 컨디션을 숨김없이 드러내게 했다. 그때 그것은 단순히 위로 향하는 구조물이 아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아직 나는 할 수 있다'는 작고 미약한 생의 증거를 들려주는 존재였다. 숨이 차오를 때조차, 계단은 늘 위를 향해 있었다.


오늘도 지하철 역의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닳아 빠진 신발의 굽, 손과 등에 짊어진 짐, 구겨진 옷자락들. 하루의 무게가 응축된 그 모습들 속에서 삶이 우리를 얼마나 성실하게 만드는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 또한 매일 어딘가로 묵묵히 올라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계단은 대신 올라 줄 사람이 없기에, 앞서 걷는 이들의 고단함이 유독 선명하게 느껴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스스로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자리. 그래서 계단 앞에서는 누구도 꾸밀 수 없다.


이제는 내려갈 차례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올라갈 때와는 다르다. 눌러 밟던 힘이 서서히 풀리면서 몸은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간다. 내려오는 길이 수월해 보일지라도, 서두르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균형이다. 더 낮아지는 곳으로 향할수록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밀어 올리던 집념이 스르르 풀리고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내려가는 길이 있어야 다시 오를 수 있고,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함께 있는,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곳. 나는 그 위에서 매일 조금씩 더 살아내고 있다.


오늘도 계단에서의 사색은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든다.


내일도 나는

한 계단씩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