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피할 수 없는 삶을 산다. 특히 나는 삶을 선택당했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그것이 나의 삶에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아서는 아니다. 삶이란 필연적으로 불행을 만나는 일이기에 인생 속에 떨어진 이상 불행은 마주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나의 생을 철저히 외면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이 많은 게 사람이고 살아가며 그 부족한 것들을 채워가는 것이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만약 채워야 하는 것이 깨져버린 항아리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나는 깨져버린 항아리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갈증만 나게 하는 텅 빈 항아리. 나를 채워보겠다고 도전한 사람들도 많았다. 아니, 내가 도전해달라고 애원했던 가. 그들은 그저 항아리 주변을 맴돌다 돌아가기도 했고, 손을 넣어보기도 했고, 구멍을 막을 무언가를 가져오기도 했다. 나는 외면했다. 안되는 걸 부탁하는 내가 애처로웠고, 애처로운 나를 알아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이들이 안쓰러웠다.
물론 나 스스로도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나의 조각을 찾아준다는 강의나 교육도 많이 들었다. 더 깊은 심연 속에 들어가 보면 답을 얻게 된다는 말에 나의 마음속 밑바닥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태생부터 깨어진 것을 메꿀 방법은 없었다. 깨어진 것은 깨어진 것이다.
오늘도 난 긴 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 속으로 들어간 공기가 나의 깨어진 틈으로 온통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걸 보니 오늘도 살아야 할 모양이다 하고 생각해버린다. 깨어진 빈틈을 메꾸기라도 하려는 듯 호흡은 가쁘고 심장은 빠르게 요동친다. 의사는 나에게 불안장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물론 그것이 깨어진 틈의 답이 되지는 못한다.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늘 해결책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니까.
어느 영화에서 깨어진 항아리를 연못 속에 던져넣는 장면이 있었다. 이를 본 스님은 맑은 물이 항아리에서 넘쳐난다며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묻고 싶다. 나라는 항아리는 도대체 어디에 던져넣어야 하는 것이냐고. 어디에 던져넣으면 맑은 샘물이 샘솟아서 이 아픈 호흡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