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노동과 관련해서 가장 핫한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워라밸'이 아닐까 싶다. 처음 이 용어가 나왔던 배경은 가정이나 개인의 삶을 등한시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자는 이야기를 전달코자 함이었을 텐데, 점차 일과 삶을 대립관계로 보는 프레임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일과 삶을 저울 양편에 두고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은 희생해야만 하는 관계로 바라보는.
그런데, 최근에 관련해서 반가운 신조어가 생겨났다는 소식이다. 그건 바로 '워라블'.
워라블은 Work-life Blending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blending의 뜻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사전에는 '두 개 이상의 성분을 철저히 믹싱(Mixing)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커피에 쓰이는 원두를 블렌딩 한다는 말이나, 싱글몰트가 아니라 여러 원산지의 원료를 섞은 위스키를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블렌딩(blending)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work-life blending은 '일과 삶이 최적으로 조화롭게 섞여있는 형태'를 뜻한다. 워라밸이 일과 삶에 각각 투자하는 시간을 완전히 단절해서 이야기한다면, 워라블은 이 둘이 마치 유기체처럼 섞여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다. 바로 '일과 삶을 완전히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는 사실.
아무리 회사문을 떠나면서부터 '이제 나는 회사 일은 생각도 안 할 거야'라고 해도, 회사에서 해결되지 않은 골치 아픈 일이 있었던 날에는 집에 와서도 마음이 썩 개운치 않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목욕을 시키고 책을 읽어주고 재울 준비를 하고 같이 잠자리에 누웠을 때, 회사에서의 그 문제는 내 머릿속에 또다시 떠오른다.
일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크다. 정규직이라고 할 때, 주중에는 하루에 최소 8시간씩 일을 하는데,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을 16시간이라고 봤을 때 이는 50%를 차지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략 10시간, 이미 내 삶의 반이 넘어간다. 그런 '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고 끄는 기계도 아니고.
이러한 일을 삶과 대립적인 구조로 보는 것은 삶 전체에 대해 좋은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일에 대해서 (어쩌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퇴근 후의 삶에서 개인적인 충족을 얻는다면 그 삶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최근에 본 조선일보 기사에서 어떤 2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일은 잘하지 못하는데, 집에 가서 취미생활에만 몰두한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지지 않더라".
어쩌면 워라블은, 일과 삶을 포함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일과 삶의 방향성을 일치시킴으로써 전체적으로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일 것이다.
워킹맘인 나에게 이 '워라블'이라는 말은 더욱 새로이 다가온다. 회사에서는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집에서는 회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는데. 회사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을 고민할 수 있고 집에서는 육아를 하면서 업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글을 쓰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하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삶이 최적으로 blending되는, 그 지점을 곧 찾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