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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Feb 25. 2020

쿠크다스 심신을 위한 봄나물 테라피

오랜만에 뒷산을 올랐다. 수영장도 헬스장도 모두 문을 닫아 운동을 하러 갈 곳이 뒷산밖에 없었다. 사람도 없고 하늘도 새파랗게 맑았다. 진달래가 피어나려고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고, 소복이 올라온 냉이는 1학년 아이들처럼 재잘거린다.


모든 어린것들은 예쁘다. 특히나 새로 올라오는 보드라운 잎들은 '나물'이라 불리며 봄을 알려 준다. 다래순 잎, 뽕잎, 고사리, 쑥 등등. 이런 식물이 여리여리 할 때는 분명히 봄나물이다. 햇볕을 듬뿍 받아 4월이 되면 그냥 풀이고 나뭇잎이다. 그때는 나물로 불릴 수가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린 연둣빛 새 순을 데쳐서 무치면 아무런 양념이 없어도 나물 자체가 양념이 되어 준다. 그랬던 나물도 몇 주 만 지나면 푸릇푸릇하게 씩씩해져서 봄나물은커녕 잡초가 된다. 봄나물 사진을 찍어 친구들 단톡방에 보냈다. 봄나물의 여린 감성과 향긋함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글을 곁들여서.


그랬더니 한 친구가 답을 했다. 봄나물처럼 여리면 사람들 식탁에나 오르지, 자기는 잡초처럼 억세게 들판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친구의 반응이 재미있 한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야말로 잡초처럼, 바람이 불면 먼저 누웠다가 햇볕보다 먼저 일어나는 삶을 살아왔다.  너무 억세 져서 나무껍질처럼 척박한 감성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니 봄나물의 여린 자태를 선망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평생을 보드라운 꽃잎처럼 살았다. 우수한 두뇌와 학력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갈등과 피곤을 이기지 못하는 심신 미약 상태라고 자주 말을 다. 작은 비난의 말에도 잠을 설치는 쿠크다스 멘탈에 저질체력이라 돈 버는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친구는, 억세게 자기를 지키며  들판에서 살아내는 야생의 풀이 좋아 보였나 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부족함을 동경하며 발란스를 맞추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은 여전히 동경으로 남아 있고, 내가 동경하는 삶을 직접 사는 친구의 모습을 부러워다. 나는 전업주부가 평생의 꿈인데 그 꿈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부러운 모습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은 나의 고단함과 조금 다르다 뿐이지 그리 가벼운 건 아닐 듯하여 위안이 된다. 내가 가진 고민은 나에게 최적화되어 있어, 나름 해결책을 찾아가며 그럭저럭 견딜만하게 단련이 된 것이다.


나는 어떻게 걱정과 상처들을 다루어 지금의 '나'가 되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이혼과 사이비 종교를 겪으며 내 생겨먹은 기질을 찾아내는 데 14년이 걸렸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발끈하는 과잉 반응 상태 시절도 었다. 불쌍해 보인다는 눈빛 만으로도 너무 아파서 그 사람을 피했던 시절이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도 자라, 이젠 내 불쌍함을 팔아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내가 대단히 성공을 했으면 과거야 비참할수록 스토리가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쌍하게' 살고 있다. 아버지는 전화만 하면 계속 현 남편과 살 거냐고 물으신다. 고향을 떠나 이방인과 떠돌이의 삶을 사는 모습이 아버지가 보시기엔 잠시의 '외출'이라 여겨지나 보다. 아버지는, 이제 외출에서 돌아와 '멀쩡한' 한국 남자를 잡아 '멀쩡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예전 같았으면 아버지의 걱정에도 발끈했을 것이다.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번번이 아버지는, "이제 고만 살 때도 되지 않았냐", 하시니 난감해진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살 만해요. 조금만 더 살아 볼게요." 하는 여유가 생겼다. 나 자신에게 기특하다.


여전히 작은 지적이나, 걱정을 가장한 비난이 아프긴 하다. 그러나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나의 콘크리트 멘털 구조에 대해 생각을 해 봤다. 어쩌다 이런 튼실한 멘탈이 되었는지 기특하고 가끔은 신기하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나름의 보호하는 시스템으로 진화시켜 왔을 것이다.


나는 비난이나 지적의 말을 들었을 때 사실여부를 한 참 고민한다. 그 말이 사실이면 부끄러움으로 화가 난다. 학부모에게 지적을 당했을 때가 그렇다. 내가 무심코 보아 넘긴 아이들 간의  분쟁에서 한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랬다. 분명한 내 과실이니 아프고 부끄럽다. 바로 내 잘못을 인정하고 학부모와 원장님에게 사과를 했다.


학생의 책에 오답을 고쳐 주지 않고 맞다고 동그라미를 쳐 주거나, 아이의 과제를 꼼꼼히 검사해 주지 않았을 때가 있다. 며칠 후에 원장님으로부터 학부모 컴플레인을 전달받으면 엄청나게 수치스럽다. 학생도 학부모도 다 밉고 부족한 나 자신은 더 미워진다.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 바로 내 잘못을 시인하는 게 화를 오래 끌지 않는 최선책이다. 좀 더 세심히 살피는 건 노력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 정도 상처는 아프지만, 나를 위해서 발전적인 아픔이다.


바꿀 수 없는 성격이나 환경에 대한 지적은 상처로서 아주 질이 좋지 않다. 내가 지금도 발끈하는 지적은 나쁜 엄마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질기게 못 벗어나는 열등감인 걸 보면 내가 진짜 나쁘긴 한가 보다. 나에게 나쁜 엄마라는 지적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우리 애들 뿐이다. 그 아이들이 하는 원망이나 비난은 열이면 열 번이라도 사과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이 든 남자 어르신이나 엄청난 불행도 몸소 인내로 버텨온 어머니들이 나를 비난한다.  


전에는 억울하다고 항변을 했지만 이제 뻔뻔해져서 비난의 말을 고스란히 맞는다. 안 아프진 않지만 덜 아프다. 내가 다시 선택해도 또 오늘의 나로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비난은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만 만난다.


상처는 숨기면 자체 증식을 해서 내 체감 통증은 더 커진다. 그런데 이 상처란 놈은 언어로 풀려 나오는 순간 형체를 달리한다. 봄나물이 햇볕과 바람을 입어 약초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쑥이 새 순 일 때는 봄나물이지만 무럭무럭 자라 비바람을 견디면 약쑥이 된다. 상처도 그렇다. 숨기고 아파하면 내 속을 파먹지만 공유하는 순간 시행착오를 겪어 해결책을 찾아가는 '경험'이 된다.


경험을 나누는 것은 공감을 만들고 공감은 이해와 연대를 만들게 된다. 상처를 햇볕에 내놓는 순간부터 '약초'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얇은 스타킹을 신을 때마다 한 말이 있다. 지금의 고탄력 스타킹은 그나마 두세 번 정도 신을 수 있다. 하지만 예전의 스타킹은 그야말로 일회용이었으니, 신을 때 손톱이나 반지에 걸리면 신기도 전에 고가 나간다.


 내가 스타킹을 신으면 엄마는, "그 스타킹은 눈만 흘겨도 고가 나가니 너무 비싸다."


우리 멘털도 스타킹처럼 눈만 흘겨도 고가 나갈 만큼 연약하다. 하지만 바람과 햇볕으로 강해 질 수 있다. 향긋한 봄나물도 쓰디쓴 약초가 되듯이 우리의 멘탈도 튼튼해 지길 바란다.


 

MUFFIN GOOD SWEETIE!! -네 생긴 대로, 내 생긴 대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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