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치냄새, 《다정한 구원》
하루 종일 손끝에서 쾌쾌한 냄새가 난다. 익숙한 듯 불쾌한 이 냄새. 찝찝한 마음에 개수대로 가서 손을 박박 닦는다. 이제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잠시 뒤 다시 손끝을 코에 갖다 대면 여전히 침대 밑에서 오래 방치된 양말 같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김치를 썰었다.
김장철이 다가오니 일년내내 김치냉장고 한 켠에서 묵은지가 된 녀석들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새로운 김치를 맞이하기 위해 요맘때쯤 늘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이다. 우리집 김치의 출처는 모두 시어머니이다. 된장찌개 끓여 놨다고 하면 밖에서도 아버님이 헐레벌떡 귀가 하실 정도로 손맛 좋은 어머님의 김치는 매년 반가운 손님이다. 어머님은 내가 결혼한 첫 해부터 지금까지, 일손 하나 보태지도 않는 며느리에게 김치를 보내주신다. 김장철에만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 텃밭에 무가 자라면 석박지, 쌀쌀해질 무렵이면 갓김치, 여름에는 열무김치, 햇 부추가 나는 시기에는 부추김치, 파가 맛있으면 파김치, 밥 맛이 없을 땐 깻잎김치 등 계절이 네 번의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일곱 가지도 넘는 김치를 맛본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김치들이 모두 반갑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성장한 나는 창원이 고향인 남편과 결혼하며 새로운 김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강한 젓갈 냄새는 기본이고, 어떤 김치는 비주얼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어느 날은 김치통을 열어 가장 위에 있던 배추를 들어 올렸는데, 그 밑에 생갈치가 누워 있는게 아닌가?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또 다른 날은 김치 속에 벌레 같은 것이 있어 깜짝 놀라 어머님께 전화했던 철없는 시절도 있었다. (청각이었다.) 신혼 초, 어머님의 김치를 받으며 새로운 충격을 받을 때면 어머님은 매번 이 말을 놓치지 않으셨다. “입맛에 안 맞제, 근데 니 먹다보면 이제 서울김치 못먹는데이” 마치 경상도 사람들에게 김치 부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남편과 나는 ‘김치 없이 못살아’의 소속 대원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어머님이 애써 보내주시는 김치들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다. 그만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작은 체구로 정성을 다해 만드셨을 모습을 상상하면 차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어머님의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얼마 전 친정집에서 꺼내 주는 김치를 먹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심심하네’
김치통을 열고 김치를 썰 때마다 ‘언젠가는 이 김치를 받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꺼내어본다. 당연하게만 받아오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의 그리움과 아픔을 나는 어떻게 내뱉고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아직은 건강하시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다는 말은 어머님께 선명하게 다가온다. 최근 자주 병원을 찾으신다. 예전만큼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걸 자주 느끼는 어머님과 통화할 때마다, 흐릿해지는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음에 무기력해하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 우리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던 무렵, 임경선 작가의 《다정한 구원》에서 한 구절을 만났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실감 뿐이다.” 어머님은 아들의 전화로 사랑을 실감하신다. 남편은 부르면 대답해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사랑을 실감한다. 나는 김치를 썰고 손 끝에서 나는 김치 냄새를 맡으며 그분의 사랑을 실감한다. 임경선 작가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다를 찾아가 “바다의 쌉사름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지는데 일부분을 담당한 이곳의 파도와 바람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머님의 김치는 나에게 그러한 존재이다. 나를 경상도 김치파로 섭외하는데 성공했고, 손주에게 김치 맛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준 존재이다. 어머님의 김치는 나와 아이들이 매콤하면서도 따듯한 삶의 맛을 알게 하는데 일부분을 담당했다. 그렇게 어머님의 김치는 영원히 우리 가족에게 다정한 구원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내 손끝에서 나지 않을 어머님의 김치 냄새가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