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경쟁과 당국의 무관심이 위험한 도로를 만든다
자동차 업계에는 '국민 썬팅'이라는 용어가 있다. 전면 유리가 가시광선을 30% 정도 투과하도록, 그리고 옆 유리는 15% 정도 투과하도록 썬팅을 진하게 하는 것인데, 투과율의 숫자가 낮을 수록 어둡다. 최근 출고되는 신차들 대부분이 이 정도로 짙은 썬팅을 시공하고 나가기 때문에 '국민 썬팅'이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 법에는 전면 유리의 가시광선 투과율을 70%로 규정하고 있다. 그 위로 70% 투과율의 필름을 붙이기만 해도, 법에서 정한 기준을 벗어나게 된다. 요즘 나오는 신차들은 대부분 자외선 차단 유리가 장착되어있으니, 거의 모든 차들이 불법썬팅을 하고 다니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일선 경찰관들은 불법썬팅 시공이 된 차들을 단속하고, 원상복구를 명령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짙은 썬팅을 이유로 길 가는 차를 멈춰 세워 단속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전국민을 상대로 단속을 해야하는 꼴이 됐으니까.
짙은 썬팅은 도로를 위험하게 만든다.
이런 짙은 썬팅 문화는 우리 도로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썬팅 농도가 30-40% 수준만 되어도 운전자의 보행자 식별 능력은 급격하게 내려간다. 짙게 썬팅을 해놓으니 밤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헤드라이트 튜닝을 하는 운전자들도 있는데, 이 또한 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위험한 행동이다. 너무 밝은 헤드라이트는 보행자와 이륜차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다. 실제로 적잖은 이륜차 운전자들이 자동차의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주변 사물과 도로를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짙은 썬팅은 블랙박스 성능을 저하시킨다. 좋은 사례가 있다. 필자는 블랙박스의 야간 촬영화질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블랙박스 성능을 대신 확인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살펴도 블랙박스 성능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지인의 선팅이 너무 짙어 선명한 영상을 얻을만한 노출값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사고 상황을 녹화하려고 설치했지만, 상대방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누군가는 좋은 썬팅 필름을 사용하면 시인성이 개선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필름에 금속 성분을 넣은 반사 필름들은 30% 농도로 시공을 해도, 투과율 50%와 비슷한 수준의 시인성을 보여준다.(필자는 이 경우는 제조사의 투과율 측정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류의 선팅필름 대부분, 일반 소비자들이 이용하기에 터무니 없이 비싸고, 안전을 유지할만큼의 가시광선 투과율을 유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국민 썬팅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이런 유행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필자는 한국 특유의 동호회 문화, 그리고 이들에게 일정한 협찬금을 주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동차 용품점, 여기에 영업사원들의 사비로 출혈경쟁을 벌이는 과열된 자동차 영업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됐다고 본다. 지금도 매일같이 '신차 동호회'에는 딜러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받았는지 자랑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신차 동호회 문화는 과시적 소비와 뗄 수 없는데, 딜러에게 받아내는 서비스 품목들을 과시하면서 좀 더 '현명한 소비자'로 스스로 포장해낸다.
딜러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서비스는 한정적이다. 좀 더 유명한 브랜드를 창조하고(실제로 한국에 있는 썬팅 브랜드 상당수는 한국에만 존재한다.), 확인하기 어려운 스펙들을 강조한다. 애프터 마켓 네비게이션과 블랙박스의 유행이 저물어가니, 자동차 용품점도 '내 차를 위한 더 좋은' 상품들을 허황된 미사여구에 담아 운전자들에 강권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시 자동차 동호회로 유입되면서, 걷어지지 않는 거품들이 쌓이고 있다.
여기에 '과잉'을 추구하는 문화도 함께 지적해야한다. 한국 자동차 문화는 약간의 '불편함'도 인내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데, 이것이 낮은 안전기준과 결합되어 안전 사양을 줄이고 편의사양을 늘리는 상품기획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눈에 보이는 편의사양을 챙겨야하니, 보이지 않는 안전사양과 기본기를 덜어내는데, 썬팅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름에 운전하면서 더우면 안되고, 밖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봐서는 안되는 불가능의 영역을 추구하니 유리창이 점점 짙어지는 것이다.
과도한 썬팅은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과시적 소비와 동시에 서비스에 집착하는 '현명한 소비자'에 대한 강박, 그리고 불편함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는 문화적 현상이다. 당연한 것으로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걷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제도적으로 단속해나가려해도, 거부감만 불러 일으킬 뿐이다. 그 전에 과도한 썬팅이 위험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한다.
음주운전이 그랬다. 예전에는 다들 술 한 잔하고 운전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지만, 차 안 실내 흡연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차 안의 재떨이가 사라진 것처럼, 머지 않아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사라질 것이고, 운전 중 휴대폰 사용처럼 단속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생길 것이다. 썬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짙은 썬팅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운전자가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생기는 사고는, 시야를 방해할만한 짙은 썬팅을 선택한 운전자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