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의 슈퍼히어로 드라마
가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같은 마블, DC의 캐릭터가 아니라 한국의 슈퍼히어로가 있다면 어떨까. 뉴욕의 어느 빌딩이나 라스베거스 같은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광화문광장이나 강남역 10번 출구, 남산타워 같이 우리한테 익숙한 장소에서 하늘을 날고 차를 들어올리고 초음속으로 달리는 슈퍼히어로를 만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요.
디즈니플러스는 제 오랜 소원을 풀어줬습니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위험에 맞서는 한국형 슈퍼히어로 드라마 <무빙>이 8월 9일 공개됐거든요. 한국 드라마 역사상 역대 최고 제작비인 650억을 쏟아부은 <무빙>은 제작 발표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습니다.
어벤져스급? 이제는 무빙급 캐스팅!
<무빙>의 기대감을 높인 첫번째 이유는 캐스팅이었어요. <극한직업>, <7번방의 선물>이라는 쌍천만 타이틀을 갖고 있는 류승룡. 미남배우 계보를 이으면서도 <모가디슈>, <밀수>를 통해 우월한 기럭지 만큼 연기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조인성.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기록과 함께 20대부터 탄탄한 필모를 쌓은 한효주. 그리고 무려 10여 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류승범과 오리지널 캐릭터까지 만들어 캐스팅한 차태현까지. 각자 영화 한 편의 주인공으로 무리없을 어벤져스급 배우들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조금이라도 튀어보이려고 할 때 조화가 깨지며 작품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죠. 물론 <무빙>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위해 조인성과 한효주는 타고난 멋짐을 포기했어요. 물론 완전히 가릴 수는 없지만요.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따고 아이 먹일 분유를 타는 조인성. 돈까스집 사장으로 변신해 화장기 없는 얼굴로 고기망치를 두드리는 한효주를 다른 작품에서 본 적이 있나요?
류승룡은 또 한 번 치킨집 사장으로 활약합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전화기를 드는 순간부터 전국민이 아는 대사를 할 것만 같아요. 어떤 배역을 못하겠냐싶은 연기도사지만 코미디에서는 정말 타의추종을 불허하죠. 그렇다고 <극한직업>처럼 마냥 코믹하지만은 않아요. 과거로 돌아간 이야기에서는 화끈한 액션, 두근거리는 로맨스, 눈물 쏙 빼는 드라마까지 배우 한 명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르의 연기를 정말 신들린 듯 해냅니다. 류승룡의 초능력은 연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베테랑들만 활약하느냐. 아닙니다. 자녀세대를 맡은 이동하, 고윤정, 김도훈 배우도 깜짝 놀랄 열연을 보여줘요. 극의 진행을 위해 1차원적으로 소비되거나 표현되지 않아요. 확실한 동기를 갖고 주도적으로 움직여 본인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베테랑 배우들이 긴장 많이 했을 거예요. 잠깐 등장하는 조연들까지 빈틈이 없으니 이제 어벤져스급 캐스팅이 아니라 무빙급 캐스팅이란 말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요.
https://web.teum3.com/v4/contents/detail/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