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시리즈>의 핵심은 아라키스 행성의 광활한 풍경과 구조물을 익스트림롱숏(ELS, Extreme Long Shot)으로 포착해 캐릭터들을 한없이 작아 보이게 가두는 연출이다. 커다란 우주선에서 내리는 베네 게세리트의 느릿느릿한 발걸음, 크게는 2km에 육박한다는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의 위용과 한 입에 삼켜지는 스파이스 채굴기의 대비, 광대한 사막에 버려진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과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의 미미한 존재감, 셀 수 없는 프레멘 사이를 뚫고 가는 폴의 움직임까지 ELS은 폴이 아라키스에서 겪게 될 운명을 절대자의 시선에서 무덤덤하게 관조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아라키스 행성을 무섭도록 차갑게 관조한다. 예정된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절대 카메라 밖으로 뛰쳐나갈 수 없는 작고 초라한 피조물들의 발버둥이 메마른 사막을 배경으로 잔인할 만큼 건조하게 그려진다. BBC의 다큐멘터리만큼 멀리 떨어진 카메라 탓에 관객의 마음도 주인공들에게 가닿기 어렵다. 평범한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섭리이자 폭력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이런 방식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에서도 수도 없이 등장한 캐릭터의 익숙한 운명이기도 하다.
1+1=1의 끔찍한 수식을 선보이며 드니 빌뇌브의 이름을 전 세계 영화 팬에게 각인시킨 <그을린 사랑>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국제 정치판에서 자유의지를 잃고 그저 장기 말 중 하나로 전락해 버린 <시카리오>의 공허한 공포감, 쏟아지는 함박눈으로도 덮을 수 없던 냉혹한 진실에 결국 주저앉아버린 <블레이드 러너 2049>, 우주적 깨달음을 얻어야만 겨우 인정할 수 있던 운명을 보듬는 <컨택트>. 빌뇌브의 주인공들은 매번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이는 애처로운 존재였고 공교롭게도 듄의 폴 또한 그 세계관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방대한 원작에서 폴의 운명에 집중하기 위해 여러 각색이 필요했다. 눈에 띄는 건 버틀레리언 지하드와 길드의 영향력 감소다. 버틀레리언 지하드는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는 해방전쟁이었다. 이후 컴퓨터, 인공지능이 금지됐고 항법사들은 아라키스에서 나오는 스파이스를 통해 예지력을 키워 우주항행을 했다. 이 우주항행을 독점하는 길드는 막대한 상업적 영향력을 펼치며 황제와 대가문(정치), 베네 게세리트(종교)와 함께 우주를 이끄는 3대 세력으로 커졌다는 게 듄의 세계관이다.
빌뇌브의 <듄 시리즈>에서는 생각하는 기계 대신 복잡한 계산을 하는 인간 컴퓨터 ‘멘타트’들의 활약이 대폭 줄었다. 원작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멘타트 투피르 하와트는 2부에서완전 증발해버렸고,, 길드의 영향력 또한 축소됐다. 정치와 종교, 경제가 맞물리며 견제하는 팽팽한 세력 싸움도 다소 느슨해졌다. 황제와 아트레이데스, 하코넨의 치밀한 수싸움이 벌어졌던 배경이 옅어지며 정치세력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작아졌고 대신 폴이라는 개인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폴은 의심이 아니라 고민한다. 폴은 종교단체 베네 게세리트’’에 의해 무려 90세대 동안 이루어진 교배 계획의 최종단계에 이르러 태어난 운명적 존재였고, 그들이 뿌려놓은 광신의 씨앗은 프레멘 사이에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 폴의 결심을 가로막는 건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드문드문 펼쳐지는 미래에 대한 예지였다. 자신에 의해 촉발되는 성전으로 인해 610억 명의 사람이 죽고 90개의 행성이 파괴되며 40개의 종교가 사라지는 폭력적인 미래 앞에서 그는 메시아가 될지,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지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익스트림롱숏으로는 폴의 이런 고민을 관객에게 이입시킬 수 없다. 폴의 대사와 파편화된 미래의 잔상으로는 610억의 천문학적 숫자의 죽음이 와닿지 않는다. 지구 건너편의 천재지변보다 운동화에 들어간 돌멩이 하나가 불편하게 느껴지듯, 익스트림롱숏으로 보는 아라키스는 마치 관상용 개미집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무심한 인간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무미건조하다. 이런 차가운 시선에 반기를 들며 인간적 감정을 불어넣는 건 폴의 연인인 챠니(젠데이야)다.
차니는 원작의 순종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북부 프레멘 출신인 그녀는 남부의 근본주의자들과 달리베네 게세리트가 뿌려놓은 메시아 ‘리산 알 가입’에 관한 예언을 믿지 않는다. 폴의 선지 된 운명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가 끝까지 프레멘의 동료이자연인인 우슬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녀의 이명은 사막의 샘이라는 뜻의 ‘시하야’. 공교롭게도 사막의 샘이 눈물을 흘릴 때 예언이 실현된다.
기어이 복수를 실행한 폴이 황권을 이양 받았을 때 챠니는 ‘예언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며 단호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 사막으로 향한다. 양손에는 샤이 훌루드를 타기 위한 갈고리가 쥐어져 있고, 단호한 표정의 그녀가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히며 파트2가 막을 내린다. 운명적 사랑으로 번민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주로 클로즈업으로 연출된다. 익스트림롱숏이 지배하는 영화에서 서로를 담은 파란 눈동자는 오아시스처럼 귀하고, 또 약하다.
폴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숨겨놓은 핵무기를 얻고 “파괴할 수 있는 자에게 진정한 힘이 있다”고 정의한다. 생명의 물을 마시고 각성한 뒤 프레멘의 지도자가 된 폴은 핵무기를 발사하고 모래벌레를 탄 프레멘들과 함께 하코넨이 점령한 아라킨의 방어막을 뚫는다. 그리고 아라키스를 압제하던 하코넨 남작, 그의 조카이자 또 다른 퀴사츠 헤더락 후보였던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와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황제를 무릎 꿇린다.
그러나 폴이 파괴할 수 있는 건 아라킨의 방어막, 다른 행성의 저항자, 종교적 이단자에 그친다. 프레멘들에겐 성전을 이끌 메시아로 우뚝 섰지만 앞으로 희생될 610억 명의 사람에게는 하코넨에 이어 등장한 또 다른 폭군의 다른 이름으로 기억될 운명이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일을 알게 된 그는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의지를 박탈당했다. 비록 파괴의 총량은 천문학적일망정 폴은 자신의 운명에 사로잡혔다. 사막의 모래보다 텁텁한 결말이다.
익스트림롱숏과 드물게 사용된 클로즈업으로 완성한 <듄 시리즈>가<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대표로 <늑대와 함께 춤을>, <아바타>까지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백인 영웅서사와는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이. 아니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마저 뺏긴 이는 진정한 의미의 메시아인가. 아니면 조금 더 넓은 감옥에 갇힌 노예일 뿐인가. 아직 그 해답을 내기에는 극장에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아 어쩔 수 없이 3편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