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d, 2024
고전영화는 무엇일까. 영화사적 정의는 있겠지만 이만큼 각자의 기준이 다른 것도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1960년대의 프랑스의 누벨바그, 그 영향을 받은 헐리우드 뉴아메리칸시네마 이전의 영화들을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최신작이나 다름없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처럼 2000년대 흥행작을 고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것도 모자라 2010년대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고전 취급하기도 한다.
음악에 비해 영화에 대한 고전의 정의가 이처럼 다른 이유는 뭘까. 아마 처음 등장했을 때는 신선했지만 여러 변주를 통해 친숙한 이야기가 된 작품들을 고전으로 분류하려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뮤지컬도 영화와 같은 기준이 적용될까. 2003년 처음 무대에 오른 뮤지컬 <위키드>는 원작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서쪽 마녀가 주인공이다. 기존의 악역을 재해석해 다면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안티히어로 트렌드가 시작된 작품이자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흥행작이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안티)히어로는 현재의 영화 관객들에게 다소 뻔하다. 스토리만 따진다면 좋게 말해 고전, 나쁘게 말해 클리셰가 되어버린 <위키드>이지만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몇 년 전 영화 <캣츠>의 처참한 실패 사례처럼 좋은 추억이 많지 않은 뮤지컬 실사화 과정에서 원작의 메시지를 흐리지 않으며 뮤지컬이란 장르가 갖고 있는 힘을 전달하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을 통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한 새로운 클래식의 등장으로 보기에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뮤지컬은 서사의 개연성이 약하다. 상영시간이 정해진 무대예술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대사가 아닌 노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는 면이 크다. 직설적인 가사로 단번에 관객을 이해시켜야 하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 1막에 해당하는 1시간 분량을 160분으로 늘렸다. 늘어난 시간은 뮤지컬에서는 제외됐던 엘파바의 어린 시절이 추가됐다. 쉬즈학교에서의 글린다와의 갈등도 더 많은 대사를 통해 그려진다. 캐릭터의 배경과 감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며 설득력의 강도를 높였다. 관객의 상상력을 채워넣어야했던 오즈의 세계는 정교한 세트와 CG를 통해 재현함으로 몰입감을 더했다.
뮤지컬의 단점이 극복된 필름 위에 영화적 연출이 더해졌다. <위키드>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곡 ‘Defying Gravity’가 나오던 순간을 보자. 오즈의 마법사와 모블린이 꾸민 음모가 탄로 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에메랄드시티의 최정상으로 도망치지만 결국 호위병에게 둘러싸인다. 엘파바는 과감히 건물 밖으로 몸을 던진다. 한참 추락하는 동안 에메랄드에 비친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마법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른다. 중력처럼 짓누르던 편견을 극복하는 노래의 메시지와 함께 상승과 추락, 비상을 보여주는 시퀀스는 무대가 아닌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이다.
가장 놀라운 장면인 무도회 시퀀스는 스펙타클마저 초월한다. 마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각각의 결여가 작은 오해로 시작되어 서서히 충족된다. 비호감에서 연민으로, 연민에서 교감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의 미묘한 표정 변화, 두려움과 호의가 담긴 몸짓이 클로즈업 된다. 우정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두 사람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와이드숏이 곧장 붙는다. 기본적인 영화 연출인 가깝고 멀고, 크고 작은 숏을 붙인 편집의 리듬이 음악과 노래가 사라진 정적을 대신한다. 뮤지컬이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화적 순간. 숏이라는 음표로 만들어낸 멜로디가 관객의 마음에 물든다.
쿠팡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제작 다큐멘터리 <중력을 벗어나: 위키드의 막이 열리다> 첫 화는 두 주연배우의 캐스팅 순간을 담았다.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신시아의 감격도 그렇지만 인상적인 건 글린다로 캐스팅된 아리아나 그란데가 오열하며 제작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순간이었다. 스포티파티 10억 회 이상의 플레이곡을 19곡이나 갖고 있는 슈퍼스타가 <위키드>에 대한 팬심을 넘어 표하는 격렬한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소설가 김중혁은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조각을 교환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글린다의 일대일 코칭이 있어도 엘파바가 파퓰러할 수 없고, 글린다가 갑자기 초록색 피부로 변한대도 금수저로 커온 인싸 본능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위치와 생각을 공유하며 감정의 교류를 이어가되,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열린 세계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오즈와 모블린의 닫힌 세계와는 다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ENFP. 안락한 루틴을 깨고 사람을 만나는 일정을 해치우고 침대에 누워 충전해야만 하는 ISTJ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지만 색다른 경험, 반대의 취향을 통해서도 기쁨과 걱정을 나누며 따뜻함을 가진 서로의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럼, 이제 고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빛나는 슈퍼스타에게도,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서로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검증된 정답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