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Warden, 2026
사극, 시대극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들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흥행 공식인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독재 권력과 싸워서 패배하거나(<서울의 봄>, <변호인>), 불의에 항거하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하고(<택시운전사>, <암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소시민(<국제시장>, <광해>,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이라는 비극적 공통점이 있다.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도 공식으로만 따지면 천만 관객 시대극의 조건을 갖췄다.
장 감독이 꺼낸 카드는 단종이다. 반만년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적인 소재 중 하나지만 정공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수양과 김종서의 극한대립이 없고, 한명회의 냉혹하고 피비린내나는 살생부, 계유정난의 긴박감도 <왕과 사는 남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미 세조는 즉위한 지 2년이 지났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됐다. 사육신의 고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단종의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라는 체념과 함께 그의 유배지인 영월로 훌쩍 시선을 바꾼다.
■ 청령포를 휘감아 도는 욕망들
<왕과 사는 남자> 주인공들의 욕망은 영월을 타고 도는 서강처럼 소박하게 굽이친다. 산골짜기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홍도(유해진)의 욕망은 단순하다. 핌피(PIMFY) 현상의 의인화 같은 홍도는 팔자를 고쳐보자는 정도의 야망 따윈 없다. 귀양살이 온 고관대작을 잘 대접해 대박이 터진 옆 마을 노루골처럼 마을 사람들과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으면 그만인 생존 본능이 홍도의 욕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곡기를 끊다시피 한 단종이 유배지 청령포에 도착한다.
단종은 욕망이 고갈된 캐릭터다. 자신 때문에 역모죄로 몰려 삼대가 멸문한 충신들은 악몽처럼 나타나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과 간신 한명회는 단종과 관련된 인물들을 내쫓아 수족을 끊어버리며 대적할 의지를 없앴다. 권력의 끈은 커녕 없는 살림에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레 차린 상까지 물려버리니 환장할 노릇이다. 더 추락할 일이 남았을까 싶은 단종의 눈앞에는 청령포를 정면에 두고, 훗날 노산대로 불린 절벽이 보인다.
결국 생존 본능까지 놔버리고 절벽에서 몸을 던진 단종을 구하는 건 생존 본능으로만 똘똘 뭉친 홍도다. 홍도에게 정통성의 재건 같은 거창한 명분은 없다. 유배지를 지켜야하는 보수주인인 그에게는 단종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해를 입을 게 분명하기에 내놓은 손길일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손길이 추락하기만 하던 단종을 끄집어올린다. 맞잡은 손으로 죽다 살아난 단종은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을 착실하게 수행해 간다.
단종은 마을 사람들이 차린 음식을 억지로라도 입에 넣기 시작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백성들을 위협하던 산군을 활로 쏴서 미간을 꿰뚫으며 왕과 왕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 정성스런 밥상에 보답하듯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소속 욕구를 충족한다. 단종이 유배됐다는 사실이 전국 팔도에 알려지자 그를 기억하는 백성들이 찾아와 귀한 식재료들을 이고 지고 찾아와 그에게 바친다. 피골이 상접했던 단종에게 이제는 더 높은 단계의 욕망이 생긴다.
하지만 청령포를 휘감는 서강이 흘러 흘러 한강이 되듯. 욕망을 넘어 탐욕으로 넘실대는 한양에서 몸소 행차한 한명회는 이제 막 백성들의 진짜 왕이 되고자 하는 단종의 욕망을 무참히 꺾어버린다. 홍도의 아들을 본보기 삼아 광천골 마을 주민들에게 엄포를 놓고, 생존 본능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려던 홍도에게 단종과 함께 죽을 것인지, 제자리로 돌아가 목숨을 부지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금성대군을 주축으로 한 복귀 운동이 벌어지지만, 극은 결국 역사라는 스포일러대로 흘러간다.
■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도 되는가
장항준 감독은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에 체념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천만 영화들의 흥행 코드를 빌렸을 뿐일까. 코믹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동료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에 누가 될까 예능 출연까지 줄였다던 그가 ‘나도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반전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패배가 나약함의 상징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은 유약한 왕으로 기억된 단종을 빗댄 표현이지만 곧 장항준이란 인물의 여정을 스스로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장항준 감독의 오랜 팬이다. 2000년대 초반, MBC FM4U <윤종신의 두 시의 데이트>에서 ‘장항준의 어수선한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그의 존재를 알게 된 뒤. 김병욱 PD의 시트콤에 카메오 출연한 그를 응원했고 <라이터를 켜라>의 감독으로 시작해 여러 부침을 거쳤다. 하지만 대한민국 3대 남편(나머지는 도경완, 이상순)의 당당한 1인이자, 감독 지망생들이 봉준호보다 더 원하는 꿀팔자의 대명사로 거듭난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식 은어가 남발되고 고성이 난무하던 90년대의 험악한 영화 제작환경을 보고 ‘성난 일본인들이 온 줄 알았다’는 장항준. 꿈꾸던 영화 일을 하면서 화내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그는 현장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재담꾼으로 살아오며 쌓은 인맥이든, 타고난 인복이든 예능적으로 순화된 꿀팔자라는 한 단어로 영화계에서 30년을 버티고 버텨, 최고참 현역 감독 대열에 합류한 그의 고생담을 다 담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왕과 사는 남자>를 ‘천만영화 흥행코드’라는 한 줄로 함축해서도 안 된다. 굳이 저 말을 풀어내자면 “성공한 불의는 인정받고 박수받아야 하는가,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도 되는가.” 묻고 싶었다는 장항준 감독의 기획 의도가 될 것이다. 그에 화답하듯 설 연휴를 보낸 관객들도 뜨거운 성원을 보내며 15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거장 직전’이란 새로운 별명이 생긴 그에게도 이제는 천만 관객의 봄바람이 불어올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