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너스:죄인들> 영생이 아닌 영원을 향한 블루스

Sinners, 2025

by 고요한

노예는 해방됐지만 짐 크로우법으로 흑백 차별은 여전하던 1932년. 미국 미시시피 델타 클라크데일 마을. 여전히 목화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들은 달러 대신 농장 주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농장 화폐를 임금으로 받는다. 기차역의 매표소, 화장실은 물론이고 번화가의 식료품점까지 흑인/백인 전용으로 분리되어 운영 중이다. 하얀 고깔을 둘러쓴 KKK단은 버젓이 활동 중이고 흑인에 대한 린치에도 특별한 제재가 없던 시절.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고작 90년 전의 일상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달아났다는 흑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은 아일랜드 맥주와 이태리 와인을 실은 트럭을 타고 클라크데일 마을에 7년 만에 돌아온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고 시카고에서 무슨 일을 해서인지 큰 돈을 번 두 사람은 KKK단의 고위 간부라는 호크우드에게서 오래된 제재소 건물을 사들인다. 조인트루크라는 흑인 전용 주점을 열고 맥주와 와인을 팔 계획이다. 형제는 주점의 일을 도와줄 사람으로 교회의 기타리스트이자 사촌 동생이기도 한 새미를 찾는다. 새미는 목사의 아들로 목회자의 길을 강요받지만, 사실은 블루스 음악가를 꿈꾸고 있다.


새미를 시작으로 떠돌이 음악단 생활을 했던 걸출한 피아니스트 슬림,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중국인 부부 보와 그레이스. 후두교 주술사이자 스택의 전 부인이기도 한 애니, 덩치 좋고 믿음직한 친구 콘브레드까지 섭외가 완료되고 마침내 조인트주크의 개업식이 열린다. 힘든 농장 일을 마친 흑인들이 모여들고 애환을 담은 블루스가 새미의 기타와 목소리, 슬림의 피아노로 절정을 향해 다다르는 순간. 영혼을 담은 목소리로 과거, 현재, 미래를 위로하는 새미의 목소리를 탐낸 백인 뱀파이어 레믹(잭 오코넬) 일당이 주점을 습격하며 잊지 못한 하룻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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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 현재 - 미래의 블루스


이렇게만 보면 고혈을 빨아먹기 위해 흑인 공동체를 위협하는 백인 뱀파이어라는 뻔한 인종대립구도가 그려지지만 <씨너스>는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끌어오고 미래로 논의를 확장한다. 백인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처럼 고귀한 귀족 혈통이 아니라, 하얀 흑인이라 불리던 아일랜드인들의 민요를 부르며 등장한다. 이 뱀파이어의 또 다른 특징은 기억을 공유하고 위계가 없다는 점. 흑인의 블루스에도 리듬을 타는 그는 피부색으로 차별하지 않는 하나의 공동체로 영생을 누리자는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대담하게도 알 카포네의 와인, 아일랜드 갱의 맥주를 털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막 나가는 형제지만 대도시 시카고도 인종차별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형제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어차피 맞을 거면 아는 놈들에게 맞는 게 낫다’는 생각. 하지만 파란색 신문팔이 모자를 쓰는 스택과 빨간 중절모를 쓰는 스모크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요시하고 농장 화폐 대신 달러만 받자는 신중한 스택.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게 두고 돈이나 벌자는 스모크 사이에서 작은 대립이 발생한다.


뱀파이어들이 막무가내로 주점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특정 장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제약 탓이다. 관객들만 알고 있는 이 정보 덕분에 뱀파이어들이 정체를 숨긴 채 문 앞에서 애걸복걸하다가 협박하고 화도 냈다가 토라지기도 하는 장면은 영화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순간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비록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일랜드인을 공동체에 포함할지 말지 고민하는 과정은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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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말하자면 흑인 공동체는 스모크의 전 여자친구인 메리(헤일리 스테인펠드)에 의해 무너진다. 메리의 정체성도 혼란스럽다. 백인 농장주와 결혼한 백인 여성이지만 외조부가 흑인이었고, 메리의 어머니가 쌍둥이 형제를 받고 함께 자라온 탓에 자신의 정체성은 흑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흑인들만 오는 주점에 방문한 것도 자신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린 전 남자 친구인 스모크를 채근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이런 특수한 배경이 선행한다.


새미의 노래 덕이 아니라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이 대립을 현재 상황에 대입할 수밖에 없다. MAGA를 외치는 트럼프는 다시 정권을 잡았고, ICE(이민세관단속국)를 앞세워 계엄 수준의 이민정책으로 유색인종들을 탄압 중이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선 과도한 진압으로 백인까지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BLM(Black Lives Matter) 구호를 외치며 미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한 게 불과 몇 년전이었는데, 이제는 인종도 정체성을 담보할 수 없고 내전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인종도 정체성을 담보할 수 없는 혼란은 조인트 주크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뱀파이어가 아니라는 증거로 생존자들은 생마늘을 씹어 삼키며 존재를 증명한다. 피부색이 공동체의 증거가 아니라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발상은 그레이스가 선포한 뱀파이어와의 전면전으로 연결된다. 남편이 뱀파이어가 되고 마을에 남겨진 딸이 위협받자, 그레이스는 뱀파이어를 술집으로 ‘초대’한다. 수적 열세에 몰린 생존자들은 금세 뱀파이어의 희생양이 되지만 어쨌든 마을은 간밤의 위기를 모른 채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새미는 블루스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다.


<씨너스>에서 적색과 청색 외에도 다른 색이 있다면 바로 흰색이다. 두건을 뒤집어쓴 KKK의 대표색인 흰색은 백인들의 피부뿐 아니라 아버지가 운영하는 교회, 주일을 맞은 신자들이 입은 옷에도 무서울 만치 공통으로 쓰이고 있다. 블루스 같은 악마의 음악을 멀리하고 주님의 곁에 오라는 아버지의 말은 현실에 맞서기보다 신앙으로 포장된 체제에 순응하고 살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런 아버지의 뒤로 짧고 강렬하게 뱀파이어의 모습들이 플래시백으로 겹쳐 연출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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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의 기억, 인간의 공감


1932년 미국에 뱀파이어가 등장하는데 현실, 초현실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지만 <씨너스>에는 잊지 못할 초현실적 씬이 세 차례 등장한다. 처음은 새미가 I Lied To You를 부르는 장면으로 아마 영화를 본 관객들이 꼽는 최고의 씬일 거다. 마지막은 KKK단과 혈혈단신으로 맞붙은 스택이 애니와 아기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다. 이야기 전개상 깔끔하게 붙는 두 차례의 장면과 달리 두번째의 씬이 문제다.


조인트 주크로 달려가는 자동차 위에서 슬림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 한다. 떠돌이악단으로 시작해 보안관에게 붙잡혔다가 정식으로 투어를 돌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는 회상. 큰돈을 벌고 고향으로 떠나려던 동료는 기차역에서 돈을 세다가 린치를 당해 돈도 빼앗기고 끔찍한 공격으로 신체도 훼손된다. 그때 외화면에서는 슬림의 동료가 두들겨 맞는 소리, 칼에 맞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끔찍한 효과음들은 새미가 부르는 노래나 기타 연주, 슬림의 하모니카 소리도 아니고 관객에게 영화의 분위기를 심어주는 스코어도 아니다. 갑자기 틈입한 이 소리의 발화지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아마 그것은 나이와 피부, 경험을 떠나 공유하는 약자들의 기억으로 작동하는 개개의 주크박스일 것이다. 겪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차별과 폭력. 1932년 미시시피 델타에 사는 흑인이 아니라도 구전민요처럼 흥얼거릴 수 있는 민중들의 소리.


뱀파이어는 기억을 공유하지만, 공동체, 가족이라고 볼 수는 없다. 레믹은 아일랜드인이었지만 KKK의 일원이었던 버트와 조안. 목화를 따던 콘브레드와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보우의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차별없는 하나를 말하지만, 삶으로 공감한 게 아닌 뇌로 주입된 기억은 그저 생존을 위해 세력을 늘리려는 본능일 뿐이다. 백인인 메리를 가족이라고 부르며 감싸안고,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의 고통에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는 흑인이 영생할 순 없어도 하나되는 순간만은 후대에 영원히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