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김치찌개

정치인의 비루한 상상력

by 고요한

작년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무동학교'에서 수업 들으며 했던 생각들을 그 순간순간 내 언어로 정리하지 못한 일이 참 아쉽다. 주변에서야 어떻게 봤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이 세상에 한 글자도 남기기가 싫었고 가능하다면 그간의 흔적도 죄다 지우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 오랜 친구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글도 다시 쓰고 있지만. 어쨌든 그런 날들이었다.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무동학교 홍보를 못해서 죄송했던 마음의 빚을 늦게나마 하나씩 갚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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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요즘에는 무동학교에서의 수업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는데 오늘 갑자기 떠오른 건 ‘배달’에 관한 이야기다. <배달의 민족> 이현재 CRM전략실장님이 오셨을 때다. 전 직장인 ‘미디어다음’에서의 일화들과 현 직장인 <배민>에 관한 소개. 그리고 로봇저널리즘 시대의 언론과 홍보에 관한 강의를 듣고 질의응답시간이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가장 많은 주문이 들어오는 시간이 언제냐’는 질문이었다. 과연 ‘스마트폰 앱을 통한 배달주문’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간은 언젤까.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이었다.

내 예상은 점심시간이었다. 왜냐면 그때 수요가 가장 많을 테니까.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오후 2~4시 사이에 가장 많은 주문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일하느라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시간에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다는 이야기였다. 흔히 떠올리는 점심시간인 11시~1시 사이에 배달시키는 사람보다 2~4시가 더 많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점심시간 역시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내 비루한 상상력으로 추측컨대 누군가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한 방에 이해되는 통계와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다면 내가 생각하는 점심시간은 오후 11~1시에서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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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치인들의 현장방문을 나쁘게 만은 보지 않는다. 내가 배민의 통계를 듣고 화들짝 놀랐던 것처럼, 현장을 방문한 정치인들도 분명 마음속에 와닿는 무언가가 있을 거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정몽준이 노량진 고시원을 방문해서 ‘이런 데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듯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던 사진이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백문이불여일견이란 고사성어가 현실에서 틀리기는 오히려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현장 방문이 아니라 태도다. 반기문 전 UN총장은 귀국 다음날부터 과감한 서민 행보를 시작했다. 통장도 개설하고 AI피해농가도 방문하고 꽃동네요양원도 가며 눈코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13일에는 청년문제를 들어보겠다며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김치찌개 식당에서 대학생, 워킹맘, 창업자들을 불러 모아 점심식사를 했다. 여학생에게 손수(!) 김치찌개를 떠준 뒤 ‘레이디 퍼스트’라고 말하는 매너를 보여줬다고도 한다. 각자 떠먹으면 될 일이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기사에 까지 언급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의전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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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밥 먹는 게 중요한 일인가. 40년 간 외교계에 몸담고, 최근 10년은 외국에 있으며 괴리된 청년들의 현실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청년실업에 대해서는 인턴을 늘리겠다는 이미 실패한 정책을 늘어놓고, 노오오력 하면 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만 해댔다. 이게 김치찌개 먹던 청년들이 원하던 대답일까.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도 공감하지 못한다면, 눈으로 보지 못할 5,000만 명의 고통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는가. 알쏭달쏭한 UN사무총장으로 업적을 차치하고라도 그따위 비루한 상상력이라면 김치찌개는 그냥 배달의 민족 쿠폰으로 쏴주는 게 서로 시간낭비 않고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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