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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Mar 04. 2024

044.  너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보았다

엄마에게서 빠져나가는 너를 바라보며




첫째 아이는 7살이 되었다. 둘째 아이는 6살이 되었다. 윤석열 나이는 아직 어색하니 7살, 6살이라고 하겠다.


유치원에서는 새로운 반을 배정받았고 곧 새로운 교실에서 아는 얼굴이 누구인지 낯선 얼굴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 친구들이 늘어가고 선생님이 많아진다. 심지어 얼굴이 익은 동네 아줌마도 늘어난다. 아이들의 인간관계가 서서히 넓어지고 있다. 동시에 아이들의 세상도 넓어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 집 연년생 남매들은 씩씩한 편이다. 앞장서서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인사하는 용기도 있고, 놀이터에서 자기보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말 걸 호기심도 충만하다. 그리고 그만큼 나에게서 엄마로부터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까치발을 해도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 숫자판에 손가락 한마디 닿지 못하던 아이였는데. 이젠 엄마 없이도 혼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탄다. 우리 집이 몇 층인지 정확히 알고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도 틀리지 않고 누른다.

내가 깜빡 잊어버리는 일들을 아이는 기억하고 내 머릿속에 되새김질해준다.

"엄마 오늘 내 칫솔통 깜빡했지? 엄마 나 오늘 미술학원 가는 날이야. 엄마 오늘 치킨 사준다고 했잖아."

아이가 기억하는 것들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때는 많이 미안할 정도다. 나이가 두 자릿수도 채 채우지 않은 아이들인데 매일매일이 감탄스럽다.


아이들의 작은 손이 그림을 그리고 레고로 제트기를 만들어 내 앞에 자랑스레 내놓을 때면 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에 잼잼이나 하던 녀석들인데. 밥 먹을 때 흘리기나 하고 종류 관계없이 물 종류는 다 엎어버렸었는데. 나보다 야무진 손을 갖추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늘 내가 감탄했던 한 순간을 적어 보자면 이것.

"엄마한테 스카치테이프 두 개만 짧게 떼어서 갔다 줘~!"


아이들을 자란다.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지고 혼자만의 생각도 커진다.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고집도 생긴다. 가만히... 엄마인 나의 역할, 엄마인 나의 위치를 둘러보았다. 큰소리 내지 않고 차근차근 타일러도 알아듣는 너. 내 생각에 이게 아닌데 엄마는 왜 저러지? 를 소신껏 말하는 너. 나보다 손재간이 좋아지는 순간을 발견하고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달려와 자신의 창조물을 자랑하는 너. 그 앞에 서있는 나를 말이다.


이제 한 발자국씩 떨어져 보아야 할 때가 왔다. 매일매일 아이들을 품에 안고, 24시간 아이들을 바라보던 일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혼자 엘리베이터도 타보고, 혼자 집에도 남아보고, 혼자 새벽잠에도 들어보고, 혼자 아파트 단지도 거닐어 보는. 혼자 오늘의 일을 떠올리며 정리하고, 혼자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혼자 장난스런 계획을 세우는. 그렇게 아이들이 할 줄 아는 게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엄마와의 물리적인 거리, 심리적인 거리가 멀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역할은 이런 것 같다. 아이들과 엄마의 거리를 탄력적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도움이 필요하고 조언이 필요하다면 또 그렇게 탄력적으로 말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엄마이고 무엇이 맞는지 여전히 헷갈리는 엄미다. 하지만 분명해지는 것은 네가 혼자 갈 수 있는 길을 막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달려가다 돌아볼 때 그곳에 서있어야 한다는 것. 뒤돌아 다시 뛰어온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안아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시 달려갈 때 힘차게 밀어줘야 한다는 것.


이 모든 일들을 엄마인 내가 눈물 없이 해낼 수 있을지 그것 한 가지만 자신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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