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원짜리 전시를 7천 원처럼 보곤 웃지요
물론 날짜를 잘못 선택한 내 탓도 있다. 전시회 마지막날인 데다 주말. 인산인해는 예정되어 있던 터였다.
그래도...!
뭉크 회고전은 나름의 기대를 한 전시회였다. 오랜만에 가는 예술의 전당이기도 했고.
아이들도 나름 6세, 7세이니 분위기에 위축돼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먹이던 예전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더구나 뭉크는 딸내미도 아는 작가라서 호기심을 더한 채 출발했다. 시작이 괜찮았다.
다시 말하지만 날짜를 잘못 선택했다. 아이들 키의 두 배나 되는 어른들이 오디오 가이드를 듣기 위해 작품 앞 앞마다 줄지어 서있었고 긴 줄은 시작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가뜩이나 그림에 별 관심도 없는 아이들에게 뭐 하나 보여줄 거라고 발걸음을 했던 내 마음은 반대 방향을 향해 달렸다. 초조함을 향해.
선택해야 했다. 긴 줄을 참을 것인가. 엄마의 지식 하에 몇몇 작품만 선별해서 아이들에게 바람처럼 보여주고 끝날 것인가.
아니, 선택지가 아니라 답안지였다.
그래도 나름 미술학도 엄마라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 한 작품들을 골라 열심히 설명했다. 물론 듣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혼자 봤으면 한 시간도 더 돌고 돌았을 전시를 10분? 15분? 만에 끝내버리고 나왔다. 그래도 아이들 표정이 밝았으니 그걸로 위안 삼았다면 삼았달까.
육아에서 어딘가를 갈 때, 특히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먼 길을 가거나 비싼 돈을 냈을 때 수지타산을 생각하면 100% 육아는 진다. 지는 비즈니스다.
본전이고 나발이고 다 떼고 발도장 찍고 눈도장 찍은 걸로 만족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너희의 기억 너머 저편 어딘가에 오늘의 순간이 미세하게나마 자리 잡고 있기를 기대하는 걸 최고의 본전이라 치는 거다.
피식- 웃음이 난다. 사실 속상한 건 나 본인이 전시를 제대로 못 본 게 속상한 것이지 아이들이 전시를 못 본 건 속상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짧게 속상해하고 끝냈다. 그것도 속으로만.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부모의 욕심은 결코 아이를 이끌 수 없다는 걸. 본전 생각해 봐야 본인만 속상하다는 반듯한 진리를 말이다.
전시는 대충 봤어도 엄마의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