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가졌다.
그 전까지는 장난감처럼 생긴 전자시계였다.
버튼을 누르면 붉은 불빛이 깜빡였고,
시간은 숫자로만 표시되었다.
하지만 열한 살이 되던 해,
나는 어른처럼 시침과 분침이 있는 시계를 차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시간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자격증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늘 시간을 의식하며 살았다.
시계와 스케줄러가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고,
완료하면 동그라미, 미완이면 세모, 실패하면 엑스.
그 표식들이 내 하루의 성적표였다.
그런 게 나였다.
계획으로 안심하고, 통제로 존재를 증명하던 사람.
그 습관은 어른이 된 뒤에도 이어졌다.
분 단위로 일정을 맞추고,
회의, 진료, 연구, 강의, 메일 —
모든 것을 시계 위에서 조정했다.
시계는 내 손목에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 시계의 노예였다.
분침이 움직일 때마다 불안이 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내 몸의 교감신경을 자극했다.
심장은 늘 달리고 있었다.
자율신경실조증이 시작된 것도
어쩌면 그 ‘시간의 폭주’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늘 서둘렀다.
마감에 쫓기고, 진료에 쫓기고, 평가에 쫓겼다.
쉬는 시간조차 시계로 측정했다.
“5분만 더 버티자.”
그렇게 몇 년을 버텼다.
결국 몸이 멈추었다.
모든 일을 내려놓은 후에도,
손목의 시계는 여전히 나를 지배했다.
시계는 마치 피부처럼 붙어 있었다.
시간을 잊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결심했다.
“오늘 하루는 시계를 보지 않겠다.”
그건 단순한 도전이 아니었다.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연습이었다.
나는 시계를 벗어두고, 핸드폰도 뒤집어두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 들어왔고,
그 빛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조금 후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고,
졸리면 누워서 잤다.
처음엔 불안했다.
“지금 몇 시일까?”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시계를 보지 않으니,
시간이 나를 따라왔다.
오전, 오후, 저녁이라는 개념 대신
‘몸의 리듬’이 시계를 대신했다.
햇빛이 기울면 느려지고,
어둠이 내리면 자연스레 조용해졌다.
그건 인간 본래의 생체시계였다.
시계가 없어도 몸은 알고 있었다.
지금이 쉴 때인지, 움직일 때인지를.
그날 하루 동안 나는
처음으로 ‘시간을 잃는 자유’를 느꼈다.
아무 약속도, 계획도, 마감도 없는 하루.
그 시간 속에서 심장은 고요했고,
어깨의 힘이 빠졌다.
나는 시계가 아닌 숨의 속도로 살고 있었다.
그날 저녁,
프랑킨센스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았다.
창문 너머로 노을이 번지고,
방 안은 부드러운 어둠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 순간을 ‘현재’라고 불렀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
시계가 없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진짜 나를 만났다.
다시 시계를 찰 때,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시계는 나를 재촉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 리듬을 기록하는 친구가 되었다.
시간은 쫓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