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 하루 중 가장 편안했던 순간을 기록하다

by 차가운무스탕

증상이 가장 심할 때, 나는 자주 카페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그 모든 소음이 나를 일상 속으로 묶어두는 밧줄 같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커피를 손에 쥐고 있어도, 손끝은 얼어 있었다.
나는 노트 한 권을 꺼내 왼손으로 글을 썼다.

왼손으로 쓴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혹시라도 내가 남긴 흔적을 엄마가 발견했을 때,
이 글이 내 손에서 나온 것임을 눈치채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런 딸이었다 —
죽음조차 누군가에게 걱정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딸.

그날의 글씨는 삐뚤었고, 획마다 떨림이 있었다.
글을 쓰는 동안 머리는 띵했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죽고 싶다”는 문장을 수없이 반복하며도,
사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을 때,
몸은 늘 같은 신호를 보냈다.
‘지금 위험하다. 지금 무너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펜을 쥔 손이 나를 붙잡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아직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왼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음의 미세한 파동을 종이에 옮겨주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살고 싶다는 몸의 저항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록은 죽음의 충동을 ‘문장’으로 바꾸는 행위다.
문장이 되는 순간, 감정은 대상이 된다.
‘나’를 삼키던 공포가 ‘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기록은 감정의 분리이자, 자율신경의 복귀 신호라는 것을.

잠들기 전, 나는 늘 불안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무겁고,
눈을 감으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몰라.’
그 모순된 감정이 한밤의 나를 가두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과,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같은 속도로 내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심장이 잠시라도 조용해진 순간이었다.
어지럽지 않고, 심장이 쿵쾅대지 않고,
몸의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 그 몇 초간의 평온.
그때 나는 알았다.
‘이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구나.’

그 뒤로 나는 하루 중 가장 편안했던 순간을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언제 어지럽지 않았는가.
언제 심장이 차분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하루를 관찰했다.
그건 마치 내 안의 바다를 매일 조금씩 측정하는 일 같았다.
조용한 파도가 잠시 잦아드는 시간,
그곳에 나의 평온이 있었다.

기록은 나를 구했다.
왼손으로 쓰든, 오른손으로 쓰든,
글은 나를 현재로 불러냈다.
그 순간만큼은 죽음이 아닌 삶의 언어로 나를 번역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향을 피웠다.
제라늄의 향.
이 향은 감정의 균형을 잡아주는 향이다.
단내가 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꽃이 피었다 지는 순간의 냄새.
그 향을 맡으며 나는 문장을 썼다.

‘오늘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 문장이 한 줄 완성되는 순간,
심장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건 단지 글이 아니라,
나를 살린 보고서였다.

지금도 나는 하루의 마지막에 이렇게 쓴다.
“오늘 내가 가장 편안했던 순간은…”
그리고 빈칸을 남겨둔다.
어쩌면 내일은 조금 더 많은 순간이 그 자리를 채워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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