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6일 일기
한겨레 기자 출신이면서 십몇 년 동안 글쓰기를 지도해온 김봉석에 따르면 일기는 멋있는 문장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본 것을 어떤 단어와 표현으로 쓰면 제일 정확할까. 어떤 사건을 보거나 경험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까.’ 이 지점을 끊임없이 고민할 것을 추천했다(김봉석, 2020: 30).
나는 주로 내가 겪은 일보다는 오늘 하루 중에 내가 했던 혹은 나에게 들었던 생각 중에 어떤 것이 흥미로웠는지를 떠올려보고 그것을 위주로 일기를 써 나갔던 것 같다. 정말 고통스러워서 떠올리기도 싫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그쯤에는 주로 내가 느낀 치욕과 수치에 대해서 썼다. 아직도 그것을 생각하면 감정이 복받쳐 타자를 치고 있는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 자꾸 오타가 나 글이 느려진다. 풀어 말해보자면, 그렇게 형편없고 자격 없는 사람이 한 국가의 그것도 내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아 우리나라 국민성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치욕(恥辱)으로 몸서리 쳐지고, 나는 이런 인간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그 수치심 (羞恥心)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진보 정치평론가인 김어준은 최근 다스뵈이다라는 방송에서 "박근혜의 당선 때 진보세력은 아직도 박정희가 건재하다는데 좌절을 맛보았지만, 이번 윤석렬의 당선으로는 아 이런 사람을 국민들은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국민의 마음, 즉 민심(民心)의 바닥을 확인했다"라고 한다.
나도 민심이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백주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맞아서 아픈 그 통증보다는 왜 맞았는지 그 영문을 모르는 게 더 큰 고통이다. 왜냐하면은 원인을 모르기에 또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 번으로 넘긴다면이야. "아 왠 미친 X가 다 있네~ 재수 없었다" 하고 넘길 테지만, 선거는 이번이 끝이 아니다. 아니, 시작일 지도 모른다.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부터 다시 저 치욕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충격에 휩싸여 격앙된 감정보다는 앞으로의 계획과 실천을 위해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