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제발 저리지 않길 바라며...
대다수 사람은 공공장소에 가면 도둑맞지 않게 귀중품을 살핀다. 이는 내가 아닌 모든 사람을 잠재적 도둑으로 가정했을 때 일어난다. 어제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다. 승객 칸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내 옆 사람이 무릎 위 가방 지퍼를 얼른 채운다.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에게 잠재적 도둑으로 취급받았다. 불쾌했나? 아니다. 그럴 만하다고 느꼈다. 대부분 사람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이 사람 입장에서는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나도 그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한다. 평범한 사람을 도둑으로 잠재적으로 상정하는 것은 우리 속에 이미 받아들여진 상식이다. 이 보편적인 문화에 대해 부당함을 토로해 문제제기하고 이를 해결코자 사회운동까지 벌이는 집단은 없을 것 같지만 예외는 있다.
흔히 ‘이대남’으로 불리는 2~30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유독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 공방이 뜨겁다. 에펨코리아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로 여겨지는 데 반해, 잠재적 가해자로 남성들이 상정되는 데에 집단적 억울함을 표현한다.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들은 격려와 위로를 받지만, 잠재적 가해자 남성들은 나쁜 놈으로 취급당하며 도덕적 비난을 받아 불쾌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가해자로 ‘오해’하는 이 문화가 원통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절대 그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남성들의 분하고 억울함에 대해 두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공공장소에서는 누구나 잠재적 도둑이지만, 그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이 남자들은 기분이 나쁜가? 혹시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인가? 2019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신고된 성범죄 중, 강간 99.4%, 강제추행 98.9% 그리고 성 착취물 제작한 범죄자 100%가 남성이다. 이 정도라면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그냥 가해자다. 하지만 이대 남들은 일부 남성의 범죄를 일반화하지 말라며 자신들은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할 생각조차 없기에 가해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앞의 논의에서 우리 대다수는 공공장소에서 잠재적 도둑 취급을 받는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않고 그럴 생각조차 없지만 그런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억울해하고 불쾌해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 왜 이대남 들은 억울함을 주장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분하게 만들었는가? 답은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his+story, 즉 남성의 역사이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지난날 역사의 기록은 남성 주체의 뛰어남을 증명해 기록한다. 여성들이 언어를 가진 적이 얼마 되지 않았음으로 역사적으로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서 뛰어난 존재,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평가받았다. 이들 집단이 가해자로 취급받는 것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낯선 일이다. 그러니 반발은 없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의 화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사실 성폭력 사건에서 잠재적 가해자/피해자로 남성과 여성을 정체화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가해/피해의 구조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평화학자 정희진의 통찰력 있는 이 지적처럼, 그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는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구조적으로 그 위치에 놓여있을 뿐이다.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모두 도둑의 위치성을 지니지만 내가 훔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다면 억울하고 분하지 않는 것처럼 성폭력 가해자의 위치에는 있지만,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가 분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가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