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발달하기 전, 개새끼들은 어떻게 내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일단 그의 ‘결핍’을 발견된다. 결핍이 불러낸 ‘괴로움’을 보고 난 일차로 연민을 느낀다. 알코올 중독에, 술이 취하면 욕설을 하고 물건을 부수며 난동을 피는 게 주된 견犬성이었던 또 다른 전남친 개새끼는 스포츠 선수였다. 운동을 잘해 명문대학을 나오고 메달도 따고 TV에도 출연했다. 활달한 성격에 친구도 많고 잘 나가는 사업가에, 좋은 부모까지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한 다리 건너 지인이었던 그에게 갑자기 관심이 생긴 건 한 술자리에서 그의 불행한 가정사를 들은 이후였다.
그는 겨우 고등학생인 엄마가 서른이 넘은 유부남에게 성폭행을 당해 태어났다. 엄마는 아빠네서 각종 허드렛일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지하실에 살고 있는 도우미 아줌마 딸이었다. 80년대 고등학생이 임신이라니. 엄마는 식구들이 그 집에서 쫓겨날까 임신사실을 숨긴 채 집을 나와 혼자 애를 낳고 길렀다. 온 낮밤으로 며칠을 떨다가 혼절해서야 겨우 들어간 미혼모 시설에서 그를 낳았다. 애를 낳고 몸을 추스르자마자 시설에서 나왔다. 좁디좁은 시설에는 비밀이 많고 배가 남산만 한 여자들이 넘쳐났다.
돈 되는 건 몸뚱이 밖에 없는 엄마는 여관바리로 일했다. 낮에는 억척스럽게 청소나 빨래 같은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피곤에 지친 몸을 손님들에게 내어 주었다. 시설과 달리 모자만을 위한 방이 있었고, 가끔 인심 좋은 손님이라도 오면 천 원짜리 몇 장이라도 손에 쥐었다. 그 사이사이 애도 틈틈이 돌볼 수 있었다. 숏타임은 고되어도 금방 끝나니 오며 가며 젖을 물렸고, 롱타임은 애를 데리고 들어가 재우고 손님과 함께 잤다. 이따금 애가 깨 불평을 듣고 얻어맞기도 했지만, 배가 고파 쩝쩝거리는 젖먹이에게 공갈 젖꼭지만 빨게 할 수는 없었다.
날이 가고 달이 기울어, 애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며 말까지 하자 여관에서도 쫓겨났다. 비싼 롱타임 손님들이 애 눈치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슴팍에 한 푼 두 푼 모은 천 원 짜리 다발들로 겨우 구한 쪽방. 달마다 내는 월세방이 아니라, 매일 아침 돈을 내야 밤에 잘 수 있는 일세 방이었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마저 송송 들어오던 그 작은방에서 엄마는 해가 뜨면 젖을 물리며 가방 끈을 달고, 날이 저물면 옹알대는 아이를 재우고, 화장을 짙게 한 채 거리로 나갔다.
그렇게 버티다 손주를 찾아온 친할머니 손에 이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당했던 그곳으로 엄마는 돌아온다. 아들만 내놓고 갈길 찾으라는 할머니에게 첩으로라도 남을 성싶어 싹싹 빈다. 늙어 쓸모없는 엄마의 엄마를 쫓아버린 컴컴한 방에 여자는 홀로 남는다. 엄마가 되려고. 태어나서 엄마 인생을 망친 아이는 평생을 그녀의 미소만 바라보며 산다. 해바라기가 다른 곳을 볼 수 없듯이.
술에 취해 꼬부라진 발음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가 못내 슬펐다. 불쌍했다. 진한 연민에 그를 꼭 안아주고 싶어 애가 탔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행복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아이. 불행했던 그... 를 내 사랑으로 채워 주고 싶었다. 그를 사랑해 주기로 결심한다. 내 사랑은 그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폭력성을 감싸주는 것이었다. 그의 전 여자친구들, 심지어 전 와이프도 해주지 못했던 것. 이걸 내가 해준다면 그를 진실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김치를 종종 썰어 넣고 되직하게 비지찌개를 끓여 먹은 어느 저녁, 빵빵해진 배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비를 켜려던 그가 멈칫한다. 갑자기 결심이라도 한 듯, 굳은 얼굴로 나지막하니 읊조렸다.
“예전에는 운동만 잘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금메달을 따도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어. 잠깐 안도했을 뿐. 이제는 운동 못해도 되고 돈도 못 벌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 그냥 이런 일상이 좋다.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마치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 백점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의 말은 나의 염원, ‘나로 인한 그의 행복’이 이루어짐을 뜻했기 때문에. 즉, 그의 결핍이었던 타자의 인정과 사랑을 내가 채워 준 것이었다. 그렇다. 그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운동을 했다. 운동을 좋아해서 한 게 아니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잘하는 게 운동이었고, 대회 나가 상을 타면 첩의 자식이건 성폭행 당해 나은 아들이건 상관없이 남에게 자랑 거리가 된 그는 인정받았다. 아버지가 그를 인정해 줄 때마다 불행한 엄마의 인생도 보상받는 듯했다.
그가 나이를 먹고 은퇴 시기가 다가오자 그의 아버지는 그를 더 이상 인정해주지 않았고, 자연스레 그의 엄마에 대한 지원도 끊겼다. 그는 여자들을 만나 결핍된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메꾸려 했다. 하지만 그의 폭력성을 견디는 여자는 나를 포함 없었다. 신경세포를 가진 인간인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을 여자는 없으니까.
알콜 중독과 폭력으로 인해 그를 떠났지만, 난 또 다른 불쌍한 개새끼를 찾아 만나게 된다. 이제는 폭력이 아닌 후려치기를 일삼으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나르시스트. 그를 사랑하기로 한건 그는 정신병자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 강간 당한 트라우마로 자폐와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의 결핍은 불안이었고 나는 그걸 채워주기 위해 늘 곁에 머물며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다.
개새끼들의 결핍을 채우고 사랑하기 위해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로 한다. 틱낫한 스님은 사랑은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왜 조울증에 걸렸는지를 가슴 깊숙이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강간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라는 걸 알고 치료를 위해 애썼다.
지인들은 ‘왜 너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간병인이 되냐며’며 볼멘소리를 냈다. 나는 왜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려 하나? 나의 결핍은 무엇인가? 나의 결핍은 남의 결핍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남의 결핍을 채움으로써 내 결핍이 채워진다. 정신분석학 적으로(라깡의 분류에 따르면), 내가 사귄 남자들은 강박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강박의 심리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타자로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완벽한 자아를 형성하려고 한다. 난 그 반대인 히스테리이다. 남의 결핍을 채우는 대상(a)이 됨으로써 쓸모 있는 나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흡족해한다. 개새끼의 견성 분석하다 내가 왜 개새끼에게 끌리는지 그 이유까지 알게 된다.
내가 왜 그들을 좋아했는지, 그들이 왜 개새끼 짓을 했는지 그 심리적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즉 나와 그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이해했기 때문에, 개새끼인 그에게도 그런 그를 선택한 나 자신에도 별 미움과 원망은 없다. 연애가 상처가 아니라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이런 사람도 만나봤지. 이번에는 저런 사람이랑은 이렇게 해봐야지’. 하며 연애를 하면 할수록 나는 노하우가 쌓이고 경험치가 늘며, 연애 경력자가 된다. 경력이 쌓이면 실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이제 연애 전문가로 거듭나는 나 자신. 개새끼들과의 만남을 상처가 아는 경험으로 삼아, 이제 그들과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들의 견성(심리)과 나의 내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글쓰기로 출발한다. 글은 진짜 나를 발견하는 가장 진실된 방법이기에.
-다음화부터 진짜 연애이야기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