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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Jun 08. 2023

그놈의 무례한 치킨

푸라닭 블랙 알리오

6월, 창문을 여니 쏟아지는 햇살을 타고 여름 냄새가 거실 가득 들어왔다. 서윤은 창틀에 올라앉아 창밖 정경을 내려다보았자. 따분한 고층빌딩이 줄지어선 무채색의 도시전망이지만, 여름은 참 달랐다. 빌딩 옆으로 줄 지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초여름의 싱그러운 연둣빛 색깔로 도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연청색 나뭇잎 안으로 노오란 꽃봉오리가 색색 고운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곧 만개할 꿈을 꾸면서.      


“띵동”      

풍경을 감상하던 서윤을 깨운 건 벨소리였다. 누구지. 택배인가? 도어벨 고장으로 집안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직접 문을 여는 대신 서윤은 현관 앞에서 목청을 높였다.     

 

“누구세요?”

“나. 야.”     


웬 남자가 큰 목소리로 한 음절씩 힘주어 나. 야.라고 대답했다. 서윤은 순간 ‘나가 누구세요?’라고 물을 뻔했다. 튀어나오는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혹시 아는 사람인데 물었다가 나중에 민망해질까 봐서였다. 잠시 저 중저음의 남자목소리가 누군지 생각했다. 생소한 목소리는 아니였다. 뭔가 익숙했다. 귀를 현관문에 바짝 대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에 달린 안테나도 머리끝까지 늘어뜨렸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쌕쌕 거친 숨소리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가 들려왔다. 아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가라고 해야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 남자 불쑥 집 안으로 들어와 버린다.      


사회인 야구 티셔츠를 걸치고 쫄쫄이 야구복 바지를 입은 남자는 아무렇게나 던지듯 신발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와 비닐봉지를 탁자 위에 놓더니 픽하고 소파 위에 고꾸라진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혀가 딱딱하게 굳은 서윤의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마치 누가 땡이라도 해줘야 다시 움직일 것처럼. 그녀는 한참을 같은 자리에서 무뢰한의 술냄새를 견디며 그를 아니 그 놈을 노려보았다. 남자는 장신에 거구였다. 평소 서윤이 누워서 낮잠을 청하던 3인용 소파에 누운 남자의 몸은 반이나 삐쭉 튀어나 있었다.   

   

저 인간을 어떻게 끌어내지? 깨워서? 아니지. 아니지. 저 몸에 손을 댈 순 없어. 일어나서 뭔 짓을 할지 몰라. 서윤은 무뢰한이 더 무례한 짓을 할까 염려되었다. 혼자 할 수 없다면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일단 경비실에 연락을 하자. 아! 도어폰이 안되지. 그럼 전화하면 되지. 얼마 전 택배를 예약하기 위해 저장한 관리실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는 순간, 아~ 점심때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었던 게 떠올랐다. 그럼 저 인간 밑에 지금 깔려 있다는 건데... 그렇담 나가서 직접 관리실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 밖에. 현관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혹시 그 사이 저 놈이 깨서 값나가는 물건을 가지고 튄다면?이라는 매우 있을 법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비싼물건이라고 해야 뭐가 있겠어? 가지고 갈 테면 가래지 흥~

아냐 아냐~ 저번달에 최신형 휴대폰 2년 약정으로 샀잖아. 저것만 가지고 가도 돈 백은 그냥 깨진다고. 그냥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나? 휴.. 어쩌지.. 큼지막한 서윤의 한숨 소리가 술 취한 침입자의 코 고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서윤의 머릿속은 한동안 남자를 치워버릴 생각으로 복잡했다. 일어나서 그냥 가주면 좋으련만. 한 시간째 요지부동 한 자세로 자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부질없는 희망이다. 옆집 사람에게 도움이라도 청해볼까. 일요일 오후 세시에 집에누가 있으려나? 옆집 사람은 본 적은 없지만 가끔 들려오는 친구들과의 시끄러운 대화소리에서 유추해 보건대 30대 초중반의 남성이었다. 나랑 힘을 합치면, 저 거구를 물릴 칠 수 있겠지?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전화기만 얻어 써도 충분하다. 서윤은 현관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차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 죄송합니다. 옆집인데요. 잠깐...”

뒷 말을 이을 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고 옆집 남자가 나왔다.     

 

순간, 서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 어..!!! 손가락으로 티셔츠만 가리킬 뿐..

그 남자는 서윤의 집 소파에 누워있는 그놈이랑 같은 야구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의문의 실타래가 풀렸다. 휴... 깊은 한숨이 안도감과 함께 몰려왔다. 좌초지종을 설명하자 옆집남자는 부리나케 서윤의 집으로 뛰어가 제 친구를 손과 발로 무지몽매하게 구타했다. 그런데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치 짐승 다루듯 거칠게 친구의 두 팔을 잡고 서윤의 집 밖으로 끌어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뭐 헷갈렸나 보지요, 하며 서윤은 쿨한 척했지만 씩씩대는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한바탕의 소동이 끝난 후, 이제야 여유로운 일요일 저녁을 즐기나 했는데 웬걸 소파 옆 탁자 위에 그놈이 남기고 간 비닐 봉지가 아직 남아있었다. 열어 보기도 전에 냄새로 바로 알 수 있었다. 매일 먹고 싶지만 살 때문에 아니 빌어먹을 인플레이션 때문에 일주일에 엄격히 한 번만 먹을 수 있는 푸라닭 블랙 올리브. 이 알싸한 마늘향! 그리웠어~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이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놓고 간 치킨을 지금 먹는다고? 아니 먹겠다는 게 아니야. 킁킁~ 냄새만 맡는거야. 아니 잠깐만 보기만 할꺼야. 진짠가 해서.


아~!! 이것은 튀긴 치킨의 맛이 아니다.

블랙 알리오는 기름에 살짝 튀기고 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오븐으로 구워낸닭이다. 보통 치킨은 속살이 뻑뻑한 편인데, 알리오는 오븐으로 속까지 익혀내 촉촉한 맛을 선사한다. 굽네치킨의 촉촉한 구운 맛과 bbq의 튀긴 바삭한 맛의 장점들이 푸라닭 안에서 합쳐졌다고나 할까.    

진정한 “겉바 촉촉”의 결정체, 그것이 블랙 알리오다. 특히 바삭 구운 편 마늘이 치킨의 바삭함을 더하고, 닭과 함께 씹으면 마늘의 고소한 풋내가 살까지 스며들어 있다. 이 고소하면서 달큰한 맛은 블랙 올리브의 달짝지근한 간장 맛을 배로 끌어올린다. 굽네치킨에서 나오는 갈비천왕의 숯불향 갈비맛과 교촌 오리지널의 달콤한 간장맛을 합친 것에 구운 마늘의 풍미가 더해져 더 깊고 담백하지만 고소한 맛을 선사한다.     

튀긴 닭에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그 촉촉한 닭살, 달큰한 푸라닭만의 비법 간장소스, 그리고 바삭 구운 고소한 마늘. 이것이 블랙 올리브의 완벽한 맛의 조화다.     


“띵동~!” 푸라닭에 빠져있던 서윤을 깨운 건 현관 벨소리였다. 누구세요? 아쉽다는 듯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도 쪽쪽 팔며 서윤이 현관에서 묻는다. 옆집 남자였다.

     

“저기~ 진짜 죄송한데요. 제 친구가 뭘 두고 왔다는데요?”     

.

.

.

.


“!“



사먹은 곳: 푸라닭 (블랙 알리오)

사진 제공: 첫번째 사진 @puradak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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