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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Feb 15. 2021

아랫집에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 선조들은 옆 집의 밥그릇과 숟가락 개수, 신발의 개수, 솥은 어떤 걸 쓰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며 지금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 정도로 관계가 깊었다. 집 안의 겹경사는 모두 챙겼으며 힘들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마치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런 삶이 아파트가 생기면서부터 없어졌다. 내 앞집에 누가 사는지, 엘리베이터에 같이 살아도 인사는커녕,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내가 살고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만 쳐다본다. 이웃에게 관심이 전혀 없어졌다. 그렇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는커녕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방문도 조심히 닫아야 하고 의자를 끄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고, 집에서 큰소리쳐도 안되고, 저녁에 세탁기도 돌려서도 안되고, 새벽에 소음이 들릴만한 그 어떤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아파트에 살면 나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더욱 큰 제약을 받는다. 아이들은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어른들이 말한다고 그대로 행동할 수 있지 못한다. 그리고 짧은 다리로 멀리 가야 되기 때문에 항상 뛰어다닌다. 그렇다 보니 쿵쾅거리며 층간소음이 발생하는데, 이게 하루 이틀 만에 끝이 나는 게 아니다. 


나도 아이가 커가면서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우리는 분기에 한 번 꼴로 아랫집에서 올라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큰 소리를 낸 적도 없는데 아랫집에서는 초인종을 눌러서 좀 조용히 해 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이런 상황이 처해지면 참 아이러니하다. 도대체 어디에서 소리가 났던 것일까? 과연 우리가 잘못한 것은 맞을까? 하는 의심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층간소음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올라와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이미 화가 나 버린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뛰었다고 시끄럽다고 하느냐고 따지고 싶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래층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화가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아이들이 뛰는 것에 주의를 주었다가 다시 뛰게 되면 내면에서 나가지 못했던 화가 아이들을 덮치게 된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소리치면 손해 보는 건 항상 부모다. 아이들은 욕망에 충실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뛰고 싶을 때 뛴다. 자아가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의 행동을 강요하기에는 내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그렇다 보니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냈다. 30살 먹은 어른과 4살 먹은 아이가 뛰는 걸로 싸우다니, 결혼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 자주 일어났다. 그런데 이런 다툼은 아이들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옛말대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에 와이프가 합세하여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행복하자고 살아도 부족한 시간을 우리 부부는 말다툼으로 감정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빈도수가 늘어날수록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집안 분위기는 점점 나빠졌다. 아랫집에 대한 불편함을 안고 아파트에 대한 삶이 회의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걸까? 이때부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아파트에서 생활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부터다. 나는 2층짜리 주택에 살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는 2층에, 우리 가족은 1층에 살았다. 우리 집에 대한 기억은 와이프가 느끼는 자연의 풍경이 아닌 겨울의 무서운 ‘추위’였다. 겨울이 되면 집에서 잠바와 버선을 신어야만 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결혼 후 아파트에서 생활해보고 싶었다. 한 겨울을 춥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불편한 감정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겨울철 한파보다도 더 심각한 감정 소비가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아파트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소비를 해야만 하는 곳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랫집에서 시끄럽다며 찾아올 때마다 아파트를 떠나고 싶었다. 이런 나의 삶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러나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가 같은 고민을 했었던 것이다. 층간소음으로부터 해방되길 우리 부부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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