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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며들다 Apr 14. 2023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


“내가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딱한 가지 있는데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겨버리는 거야”- 마크 로스코


블랙은 죽음, 레드는 피였을까? 결국 블랙이 레드를 삼키게 되었다.


40이 되고 결혼이야기가 오가던 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혼을 엄청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임감과 이혼한 지인들 때문에 무섭다는 말. 이해가 되면서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으며 마치 나도 로스코처럼 블랙에 삼켜진 듯 몸이 땅에 꺼지는 것처럼 좌절감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상처받았던 것들과 40이 되면 다 이루었을 거라는 꿈같은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찢기는 듯했다.

블랙에서 다시 레드가 발현이 되듯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나는 왜 결혼을 원하는가?

나는 아이를 원하는가? 원한다는 왜 원하는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인가?

내가 그리는 행복은 무엇인가?

태어나서 주입된 가치관이 아닌,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이라는 것은 결핍을 나았고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갈구하거나 누가 봐도 부러워할 회사를 다니고 월급 받은 것을 마음껏 써버리는 것으로 나의 허기를 달래던시절. 우연히 알게 된 마크 로스코. 시간이 지난 뒤 그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소련의 공포정치를 피해 미국으로 온 유대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가난했지만 명석했던 그,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 우울했던 그의 마음이 작품에 녹아서 그런지 나는 힘든 시절 그의 작품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를 받았다.


프로이트, 니체, 칼 융, 신화학등을 공부했고 마음에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림을 선택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마크 로스코.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허탈감등 그는 자신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죄책감은 항상 따라다녔다. 아버지에게 내가 단 한마디의 말만 하지 않았어도, 아니 따듯하게 한마디만 했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까?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모습이 내 그림자처럼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고생한 어머니를 아직 편하게 해드리지 못했다는 마음. 행복은 바라지도 않지만 잠이라도 편하게 자고 싶어서 마음공부라고 이름 붙여진 많은 것들을 미친년마냥 헤치고 돌아다녔었다. 시간과 노력의 방향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도 내 안의 나를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그림 앞에서 오열하는 것은 내가 관람객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을 보고 우는 사람들은 내가 그 그림 그릴 때 느꼈던 종교적 느낌을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내 그림이 보여주는 색 color 들의 관계에만 감동을 받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정확한 지적이 아니다. ”

                                                                                                                            - 마크 로스코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착실하게 회사 다니고 나이 40이 생물학적 유전자를 지니는 마지막 선고라도 되는 것처럼 결혼하거나 난자를 냉동시키자는 지인의 말을 나는 거부했다. 부러울 때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다. 좋아 보이고 부러워할 때도 있고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 중에 결혼하자고 했던 사람을 나 역시 떠올리기도 한다.  20.30대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운 후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는 걸 원하지 않았고 내 인생을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나를 찾는 길을 택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나의 길이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들이 나에게는 필요한 시간이었고 그냥 내 삶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왜 쉬운 길을 놔두고 꼭 어려운 길을 택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이 생각 역시 사회가 나에게 심어준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두 발로 단단하게 나라는 인생에 뿌리내리고 있는 과정이다. 언젠가는 사람은 나라는 존재자체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결혼보다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자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숙함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참 못 미쳤던 것이다. 이제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게 되니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진심으로 다른 이들에게 잘 살아왔다고,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겠어.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다시 땅으로 떨어져도 나는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바람이 불면 좀 수그렸다가 펴듯이 힘들 때 좀 쭈구리가 되었다가 다시 확신이 슨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김승호선생님께서 농사지으시며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중에서 물줄기는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임을 알기에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나는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남들이 봤을 때 엄청나게 돌아왔다.

나이 마흔, 집도 없고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다.

그런데 잘 살 자신은 있다. 나를 믿는 믿음이 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건 명품가방도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칼질하는 것도, 비싼 차를 타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소박하게 서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큐멘터리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바라보고 웃는 것이다. 소박한 것이지만 이제는 이 소박함의 소중함을 안다.

내가 이제껏 걸어왔던 아웃사이더 같은 길은 돌고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름길이었다.

나를 사랑하고 믿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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