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고친 병

by 발광머리 앤

아이를 낳기 전에 나는 염세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하루가 다 가고 해가 뉘엿뉘엿 지거나, 연말이 되거나, 일주일이 다 가면 ‘시간이 또 허무하게 다 흘러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공허했다. 그러나 임신을 하고 나서는 그런 내가 바뀌었다. 물론 입덧을 하다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날짜가 지나는 게 너무 좋았다. ‘지금 아기는 몇 센티미터가 되었겠구나!’하고 상상해 보는 게 즐거웠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제 며칠만 지나면 아이가 걷겠구나, 어린이집에 다니겠구나, 학교에 입학하겠구나, 이제 변성기가 오겠구나(털도 나겠네, 키고 커지고...), 여자 친구가 생기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며 날짜가 빨리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키와 몸무게에 목숨 걸고, 며칠 빨리 기게 하겠다고 여러 가지 운동도 시키고 극성을 떤 적도 있다.


나보고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운 것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웠지만 나도 아이와 함께 변하고 자랐다.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공부하며 사랑하는 것에 대해 몇 년을 배웠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야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학생들에게 시험 못 봤다고, 리포트 늦게 냈다고 F를 종종 줘서 나 때문에 졸업 못 하는 학생들이 한 학기에 몇 명씩 있었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심정을 알게 되니 너그러워져서 내가 학점 안 줘서 졸업 못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웬만해선 찔러도 피 한방을 안 나올 것 같았던 내가 입학식에 아이가 서 있는 것만 봐도, 수업 참관을 하면서 애가 앉아 있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난다(창피하게). 아침잠 많은 내가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캠프에 가는 아이를 위해 김밥을 싼다.


물론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고도 훌륭한 인품과 너그러움을 가질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았다면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가끔씩 나는 내가 뭐 착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하느님이 이런 선물을 나에게 주셨는지 기가 막히고 놀랍다.


미국 유아교육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엘런 갈린스키는 ‘아이의 성장, 부모의 발달’이라는 책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을 가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성인들의 인생 경험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취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자란다면 부모 됨은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아이와 함께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아기의 부모가 이루어야 할 발달이 있고, 유아기의 부모가 이루어야 할 발달이 있다. 청소년기 아이에게 맞는 부모 역할이 있고, 학령기 아이에게 맞는 부모 역할이 따로 있다.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져 이것저것 묻는 아이에게 올바른 부모 역할과, 교사나 부모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시큰둥한 청소년기 자녀에게 맞는 부모 역할을 확실히 다르다. 그런 청소년기 자녀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든다면 부모 자녀 관계는 힘들어질 것이다.


부모로서 자라는 맨 처음은 자녀를 갖기 전부터 시작된다. 자녀를 갖기 전에, 혹은 결혼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갖는 것부터 부모 됨은 시작한다. 이처럼 부모 됨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는 부모 됨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중요하고, 개인의 양육 경험도 중요하다. 부모교육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은 어렸을 때 과외와 학원에 너무 시달려서 자신의 아이는 절대 그런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이처럼 부모 됨의 씨앗은 개개인이 다 다르고, 이는 자녀의 기질과 맞물리면서 다양해져 간다. 영아기의 부모들은 자녀를 물리적으로 잘 보살피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부모 됨의 두 번째 발달단계이다. 혼자서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입을 수도 없이 완전하게 양육자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강보에 싸인 영아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입히고, 용변을 치우는 물리적인 돌봄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이 두 번째 단계에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영아들이 양육자의 돌봄에 의존해서 살아가지만, 이들이 다 같은 기질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아는 정해진 시간에 먹고, 용변을 보고,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잘 웃는 등 좋은 반응을 보이지만, 또 다른 영아는 잘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잘 울며 칭얼거려서 돌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영아들은 각각의 기질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며, 자녀가 만약 까다로운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부모는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가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자녀를 가지기 전에 가졌던 이상적인 부모 됨에 대한 이미지가 수정되기도 한다.


자녀가 유아기로 진입하면 부모 됨은 더욱 복잡해진다. 아이는 이제 첫 번째 반항기로 접어들어 ‘싫어!’, ‘안 해!’를 연발하고, 이제 스스로 걸을 수도 있게 되어 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고, 세상에 너무 궁금한 것이 많아 ‘왜?’하고 묻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을 설명해주어야 하고, 동시에 세상의 규칙과 도덕, 규범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부모 됨의 세 번째 발달단계이다. 이 시기에 만약 둘째 아이라도 가졌다면, 엄마는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유아기의 첫째를 잡기 위해 아직 걷지도 못하는 둘째 아이를 업고 달려야 한다. 많은 엄마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기 쉬운데, 사실 자녀가 아무리 사랑스럽더라도 이 시기는 참 견디기 어렵다.


이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통해서 부모는 성장한다. 자신을 위한 시간과 기회를 아이를 위해 기꺼이 포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포기와 희생은 인간으로서 성장함을 의미한다. 사실은 아이가 부모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