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고통에 맞설 기회를

by 발광머리 앤

2009년 6월에 미국의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흥미 있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로, 1937년부터 2009년까지 개인의 생애를 장기간 추적한 것이다. 이 연구는 ‘잘 사는 삶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하는 평범하고 기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했다.


이 연구의 대상은 1937년 당시 미국 하버드대 2학년 남학생 268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케네디, 워싱턴 포스트지의 편집인으로서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총 지휘한 벤 드레들리도 있었다. 이 연구에서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들은 이미 80대 후반의 고령이며, 이들이 사망할 때까지 이 연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세계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수재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야심만만하고 환경에 적응을 잘 했던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혹은 과연 행복했는가 하는 것이다. 연구 초반, 이들의 출발은 상쾌해 보였다.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한 사람이 4명이었고, 대통령도 나왔으며 유명한 소설가도 탄생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된 지 10년이 지난 후부터 20명이 심각한 정신 질환을 호소했다. 이들이 50세 무렵이 되었을 땐 약 3분의 1이 한때 정신질환을 앓았다. 잡지에서는 이를 단적으로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엔 고통받는 심장이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이 연구의 141번 사례는 이러한 표현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는 하버드대의 수재였다. 아버지는 부유한 의사, 어머니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판단력이 뛰어났다. 이상도 높았고, 건강했다. 그러나 31세에 부모와 세상에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돌연 잠적하더니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다. ‘전쟁 영웅이었고 평화 운동가였다’ 부음 기사가 나갔다.”


또한 47번 사례는,

“활발하던 한 학생은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이혼했다. 동성애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삶에 더 남은 것이 없다며 술에 빠져 살다가 64세에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고 한다. 이처럼 젊은 시절 이 하버드 대학생들에 대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 다수 있다. 이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한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기쁨과 비탄은 섬세하게 직조되어 있다.”라고 표현하였다. 장밋빛 인생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던 하버드의 촉망받는 대학생들조차도 삶에 있어서의 비탄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그는 말하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에서 행복하게 늙어 가는데 필요한 요소는 첫째,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였고, 둘째가 교육, 그다음이 안정적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 순이었다.


행복하게 사는데 가장 우선되는 요소라는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란 무엇일까? 이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작년 미국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이가 숙제를 제대로 해 오지 못한다는 사회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인터넷에 공지되는 숙제를 아이와 같이 확인하고 그 숙제를 해 가도록 도와주는데도 이런 연락을 받았기에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이는 인터넷에 공지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말로 내는 숙제는 잘 못 알아듣겠다고 하였다. 더욱이 숙제뿐만 아니라 사회 시간과 과학 시간에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다기에 너무 속이 상했다. 애가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개인교사를 구하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수학도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따라잡기가 힘들다니 수학과 외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개인교사를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찮은 기회에 아이 교육에 대해서 어느 분과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아이에게 'struggle(버둥거리다, 애쓰며 가다, 노력하다)'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아이가 스스로 버둥거리며 노력할 기회를 뺏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먼저 요청할 때까지 개인교사를 내가 먼저 알아보고 구하지는 말아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랬더니 하루는 아이가 와서 자기가 오늘 학교에서 사회 선생님과 방과 후에 따로 공부를 했다고 하였다. 지난주에 선생님께 그렇게 요청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다음 읽을거리를 주셨다고 하였다. 한 번은 읽기 교재가 필요하지 않냐고 했더니 읽기 교재를 사서 교감선생님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걸 보니 나름대로 버둥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날,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날, 부모라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힘들지 않을지, 마음에 상처는 입지 않을지 걱정이 더 많이 된다. 어떤 엄마는 “차라리 내가 가서 학교에(혹은 어린이집에) 앉아 있는 게 더 낫겠다.”라고 한다. 그리고 힘들만한 일이라면 뭐든지 대신해 주고 싶어 한다. 그뿐만 아니다. 원하던 대학의 수시 전형에서 연락이 없자, 엄마가 아이에게 더 화를 낸다. 대학에 떨어진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인데도... 엄마가 아이를 대신해 더 화를 내는 것은 아이에게서 혼자서 절망하고 슬퍼하고 다시 희망을 가질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아이에게 혼자 할 기회, 혼자서 고통에 맞설 기회, 혼자서 노력할 기회, 혼자서 애쓸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식물들도 너무 영양과 수분이 잘 공급되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약간 척박한 환경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자생력을 가질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통에 혼자서 맞설 기회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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