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우리 교육

by 발광머리 앤

이곳에서 7학년에 들어가는 아들을 학교에 등록시키려고 처음 미국 중학교를 방문을 했을 때, 놀란 것은 학교의 자연환경이었다. 넓고 푸른 잔디밭에 축구 골대가 세 세트였고 농구 골대는 줄지어 서 있었다. 그걸 보니 갑자기 슬퍼졌다. 한국에서 가끔 아들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갈 일이 있어 가보면, 쉬는 시간에 좁은 운동장에서 힘센 3학년 형들은 그나마 공과 골대를 차지하고 놀고 있고, 1학년들은 주로 주변에 서서 구경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였다. 불현듯 대학 때, 현대 문학론을 강의하시던 박동규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캐나다에 여행 가셔서 나뭇잎이 떨어져 1미터씩 쌓여서 썩어가도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옥토를 보면서,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어 고생하는 우리나라 농부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 하셨던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뭐 그게 울 일인가'하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인조 잔디 냄새가 풀풀 나는 운동장에서 바글바글 뛰어노는 우리 애들을 생각하니 속이 상하고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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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에 다니는 딸아이가 하루는 집에 와서 울었다. ‘엄마! 나 이러다가 바보가 될 것 같아.’하면서... 놀라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너무 쉽단다. 영어만 잘 하면 자기는 학교에서 공부를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단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것만 배우 다간 한국으로 돌아가서 꼴찌하고 바보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 운다는 것이다. 하루는 학교에 자원 활동을 갔더니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과 방법은 우리나라 어린이집 수준이었다. 아이들 손에 묻는 더러운 것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실제적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였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활발하게 손을 들고,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떤 대답이든지 ‘Great!', 'Excellent!'를 연발하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다시 7학년 아들아이 이야기... 아들아이가 말하길 7학년 아이들도 수업시간에 활발하게 질문하고 답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공부를 못해도 틀린 답을 해도, 아이들이 즐겁다는 것이다. ‘엄마! 공부를 못하는 애들도 기가 살아있어.’라고 하는 것이 아들아이의 표현이다. 수업시간에 다루는 내용은 한국보다 쉽다고 하지만, 숙제는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국어에 해당하는 과목에서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은 작문 숙제가 있다. 현재 시제로만 어떤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오기, 과거 시제로만 써오기, 직접 화법으로만 써오기 등등. 숙제도 무언가를 풀어오고 외워오는 것이 아닌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한다. 좀 전까지 아들아이의 과학 숙제는 뒷마당에 있는 생물체를 그려오라는 것이다. 사실 중학교 과학 숙제 치고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처럼 검인정 교과서가 없는 미국에서는 학교별로 혹은 교육구청 별로 교재를 선정한다. 현재 7학년인 아들아이는 한 달째 사회시간에는 그리스의 역사를, 영어시간에는 율리시즈를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한국의 중부지방의 자연환경, 자원 등등을 배우고 남부지방으로 넘어갔을 시간에 아주 천천히 그리스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그래서 미국 학생들은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전반적인 상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또, 수업시간에 정답이 없고 어떤 대답이나 받아들여지므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전반적인 지식의 범위는 넓으나 그것을 자기화시키기는 어렵다. 뭔가 많이 배우면서도 이걸 왜 배우는지도 모르고, 배우면서도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다.


이런 나의 생각은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들어가는 대학의 강의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학자로서 수업에 참관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학생들이 교수가 강의하는데 주저 없이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사실 별 내용 없는 질문이라도 교수는 하나하나 진지하게 듣고 대답해 준다. 여러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표현하면 교수는 그것을 하나하나 모아서 결론을 도출해 낸다. 그 과정에서 모든 학생들의 의견이 존중된다. 이것이 두 달 동안 내가 미국 강의실에서 느낀 것이다. 물론 부분적일 수도 있고, 단편적일 수도 있다.


이상의 경험을 통해서 미국의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다루어지는 내용이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고 누린다는 생각이 든다. 정답이 있고, 그것을 맞추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를 탐구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기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만나본 몇몇 한국 엄마들이 입을 모아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공부를 잘하면 물론 좋겠지만 공부를 못해도 그게 다가 아니에요. 운동도 잘할 수 있고, 밴드를 잘할 수도 있어요. 한 가지 기준으로만 아이를 평가하지 않아요’라고 한다. 한 가지 기준에 의해서만 평가당하고 기죽어 있는 많은 한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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