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문화방송의 무한도전을 즐겨 본다. 웃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조금만 웃겨도 큰 소리로 웃는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평균 미달’이라고 하는 일군의 남성들이 여러 가지 과제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초창기에는 기차보다 빨리 뛰기, 목욕탕 물 빼기, 황소와 줄다리기 등의 과제에 도전하다가 요즘은 패션 쇼 하기, 에어로빅 대회에 도전하기, 댄스 대회에 도전하기 등으로 도전과제가 바뀌었다.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무엇보다도 등장하는 출연자들의 독특한 성격 설정에 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어우러져 여러 가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개성이란 것이 뭔가 모자라고 만만해 보여서 더 웃기고, 친근하다. 항상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정준하나, 툭하면 호통을 치지만 호통치는 회수만큼이나 무식이 들통나는 박명수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유형이라서 더 재미있다.
그런데 내 관심을 끄는 대상은 바로 하하이다. 50을 넘은 나는 요즘 방송에 나오는 신인 탈렌트들이나 가수들을 잘 모르는데 처음 하하를 보았을 때는 가수인지 탈렌트인지 개그맨인지 구분이 안 갔다. 탈렌트라고 보기에는 인물이 좀 모자라고, 가수라고 보기에는 가수에게 느껴지는 끼나 카리스마가 없어보였다. 여기저기 안 끼는 오락프로가 없어 보여서 개그맨인가 했더니 재치는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연예인이 될 만한 뚜렷한 재능도 없어 보이고, 수능 특집 때 보니 공부도 못하고, 연예인이 안 되었다면 뭘 해먹고 살았을지 걱정되었다. 알고 보니 가수로 데뷔했다고 한다.
예전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데 마침 해피 투게더에 하하가 나오고 있었다. 하하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나와서 하하의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는데 초등학교 때 말썽장이였다는 친구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앉으려고 새벽에 학교에 가지 않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나, 엄마가 해 주는 밥이 맛없다고 초대하지도 않은 친구네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곤 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여기저기 안 끼는데 없는 문제아동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많은 친구들이 하하에게 하하 어머니(바로 융드 장옥정 여사이다)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음식을 아주 못하는 하하의 어머니에 관해서 인상적인 기억이 다들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하하의 어머니가 ‘다시는 안 그러기 파티’를 열었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안 그러기 파티’에 하하와 하하와 문제가 생겼던 친구들을 불러다 과자 김밥같은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 ‘다시는 싸우지 말자.’하면서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나는 문제아였던 하하가 교정시설로 가지 않고, 연예계로 가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잘 못했을 때, 혼내주거나 벌을 줄 것이다. 하지만 혼내고 벌주는 것은 훈육에서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 설사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볼 때 긍정적인 효과는 없다. 일례로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났을 때 벌주거나 혼내는 것은 거짓말을 들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지 거짓말을 안 하게 하는 방법은 아니다.
거짓말을 안 하게 하려면 혼날 만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혼날 것이 뻔한테도 엄마 혹은 교사에게 술직하게 이야기해 준 것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만약 집안의 액자를 깨뜨리고 자신이 그랬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솔직하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액자는 다음에 이야기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한 것은 즉각적으로 강화해 주고, 그릇된 행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아동은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들키지 않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것이다.
한번 혼내고 벌주면 다음에는 더 큰 강도로 혼내고 벌주어야 효과가 있다. 처벌을 많이 사용하는 부모는 아이가 가벼운 처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뎌져서 어쩔 수 없이 더 가혹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한 일에 비해 과도하게 처벌을 받는다고 느낄 때, 처벌자가 자신의 고통을 보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애써 눈물을 참는다. 그러면 부모는 울지도 않는 아이를 보고 분개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에게서 멀어져 간다. 부모는 더 이상 아이의 마음을 돌볼 수 없게 된다.
또 벌의 나쁜 점은 부모가 자녀를 벌주면서 자녀가 실패한 만큼 부모도 실패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벌은 자녀에게 주는 것인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주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 부모로서 유능하지 못 하다고 느끼게 되고, 좋은 부모가 못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말썽을 부릴 때 파티를 열어 줄 부모가 어디 흔하겠는가? 아동학을 전공한 나도 아직 그 정도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밥을 너무 질게 해서 한 숟가락을 뜨면 밥 한 그릇 전체가 따라 올라오는 음식 솜씨를 가진 하하의 어머니는 아주 훌륭한 어머니같다. 음식을 맛있게 해서 아이의 몸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이의 모든 정서를 지지해 주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를 명료화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하 어머니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한 하하의 마음을 인정해 주었다. 그것의 잘잘못을 떠나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는 안 그러기 파티’를 통해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림과 동시에 친구와 화해할 기회도 만들어 주었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의 좋고 긍정적인 마음만 지지해주고 돌보아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정서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지지해 주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파티”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아이는 ‘내 전부’를 받아들여주고 사랑해 주는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