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누릴 마지막 유년기

by 발광머리 앤

11월 마지막 주이다. 달력은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왠지 분주해진다. 어린이집도 가장 바쁠 때가 11월이다. 아이들이 내년에 계속 어린이집에 다니기를 원하는지 여부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 반을 구성하고 담임교사를 미리 정하기도 한다.


엄마 입장에서도 어린이집에서 계속 어린이집에 다닐 건지 다른 곳으로 옮길 건지를 물어보면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설사 현재의 어린이집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년에 내 아이를 보살피고 가르쳐 줄 선생님이 누군지 미리 알아보기도 한다. 심지어는 평소 눈여겨보던 맘에 드는 선생님을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으로 해 주지 않으면 어린이집을 옮길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가 내년에 7세가 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고민이 더 심각해진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일 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된 취학 전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뭔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특별한 준비를 해야 될 것 같다. 글자는? 숫자는? 영어는? 학습에 대한 집중력은? 교우관계는? 이 모든 것들이 엄마들의 걱정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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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아이가 그린 그림


아무래도 어린이집은 아이를 돌보는데 치중하여 교육 측면에서는 좀 미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어린이집에 충분히 다녀서 아이가 싫증을 낼까 봐 다른 교육기관을 고려해 보기도 한다. 이제 지금까지 애써 무시하던 주변 엄마들의 아이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 아닌 조언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남들은 그 비싸다는 영어 유치원에도 보내는데, 내 아이만 몇 년째 같은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이 왠지 미안하기도 하다. 더욱이 그 어린이집이 6, 7세 통합반이라면 그 고민은 더 커진다. 혹시 더 어린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이 소중한 시간에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나도 했었다. 큰 아이 때 한 번, 작은 아이 때 한 번. 지금 중 3인 큰 아이가 7세 때 다니던 어린이집에는 7살이 5명이었다. 네 명이 남자아이이고, 한 명은 저 멀리 호계에서 오던 여자 아이였다. 3월 달 셋째 주가 지나자 아이가 어린이집 현관에서 신발장을 보며 ‘엄마 얘가 일등이고, 얘가 이등이고, 내가 삼등이고, 얘가 꼴찌야.’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어린이집에 다닌 지 3주 동안 달리기, 신발 멀리 던지기, 딱지 뒤집기 등으로 자기들끼리 순위를 정한 것이었다. 9월이 되자 아이가 ‘엄마, 이제 내가 3 순위야. 달리기로 순위를 바꿨어.’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나 그동안 다닌 데 중에서 이 어린이집이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이어서 ‘작년에 다닌 데서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구구단 외우고, 공책에 숙제하고, 받아쓰기하던 거 정말 싫었어.’라고 했다. 어쩌다 선택한 곳이 숙제도 많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너무 학습위주여서 걱정되어 몇 번을 괜찮냐고 물어도 재미있다고 하며 다닌 곳이 사실은 싫었다니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엄마들은 그렇게 말한다. 미리미리 적응을 시켜야 한다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미리 학교 다니는 연습을 해야 하고, 미리미리 공부하는 연습을 해야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아기에만 미리미리 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미리미리 중학교 공부를 한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중학교 2학년 수학을 배운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미리미리 고등학교 문제를 푼다.

이처럼 미리미리 뭔가를 서두르는 것이 정말 좋은가 생각해 보자.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여기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가져야 앞으로 10년 넘게 ‘광풍’이라고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 속에서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내년에 7세가 되는 우리 아이를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까를 결정하는 문제는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교육을 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의 첫 발자국인 셈이다.


언제나 미리미리 앞으로 를 준비하며 현재를 희생하며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이가 지금 배워야 할 것을 지금 안 배우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을 미리 당겨서 배우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미리 배우는 것을 우리는 조기 교육이라고 한다. 배워야 할 때에 배우는 것을 적기 교육이라고 한다. 제 때에 배우면 미리 배우는 것보다 훨씬 빨리,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 배우는 과정이 즐겁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잘 한다고 느낀다. 교사는 아이의 발달을 관찰하여 아이가 흥미를 보이거나 배울만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어린이집이 따르고 있는 표준보육과정에서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축적된 아동 발달과 교육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어린이집에서 영유아를 어떻게 돌보고 어떤 경험과 활동을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기에 적합한 시기를 알고, 그 시기에 여러 가지 교육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경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만 3세가 되면 아이들은 성별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3세를 위한 표준보육과정의 내용에는 ‘ 정체감과 양성평등 의식 가지기’라는 교육내용과 엄마 아빠 놀이하기, 성폭력 안전 교육과 같은 활동이 들어간다.


유치원 교육과정이 유아기에 성취해야 할 보편적 발달과업에 대한 교육적 입장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어린이집에서 시행하는 표준 보육과정은 영유아기에 성취해야 할 보편적 발달과업에 대한 교육적 입장과 더불어 일상적 보육과 관련한 영유아의 요구 및 사회적 요구를 함께 담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의 놀이에 대한 요구, 뒹굴뒹굴 거리고 싶은 요구를 실현할 수 있다. 이 요구가 실현되지 않으면 아이는 배우지도 않을 것이다.


7세라면 아이가 누리는 마지막 유년기이다. 이 유년기를 미리미리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사회의 잘못된 분위기에 휘말려 아이로부터 빼앗지 말자. 아이의 마지막 유년기를 친구들과 즐겁게 놀며 누리게 하자. 그래서 아이의 입에서 ‘엄마 나 여기가 제일 좋아. 지금이 제일 좋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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