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펴보자, 계모 이야기

by 발광머리 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서양의 전래동화에서 유난히 계모가 많이 등장한다. 계모가 나오는 우리나라 전래동화로는 콩쥐팥쥐전이나 장화홍련전이 있고, 서양의 전래동화에는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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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전래동화에는 계모가 많이 나오는 것일까?


전래동화에 나오는 계모는 아동의 심리적 독립과 관계되어 있다. 이전에는 오줌을 싸거나 똥을 싸도, 어떤 짓을 해도 받아주던 어머니가 훈육을 시작하면서 아무 데나 똥이나 오줌을 싸면 혼내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아동에게 배변 훈련 및 사회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규범과 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훈육을 시작할 때, 아동은 이전에 알던 자신의 어머니가 지금 나한테 화를 내는 이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의심을 어머니의 존재를 계모와 친모로 분리시킴으로써 해결하는 것이다.


계모는 지금까지 나에게 애정과 사랑을 베풀다가 갑자기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과 일상생활의 훈련을 가르치고자 험악해진 친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계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동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계모에 대해서 마음껏 분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친부모에게는 화를 내거나 경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동이 좀 더 자라서 이 모순된 정서와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통합할 수 있을 때 아동은 더는 계모 이야기를 즐기지 않게 된다. 즉 아동이 어머니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계모 이야기에 담겨 있다. 또한, 그러한 독립은 창의적인 아동으로 자라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도하다.


아동 대부분이 쉽게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니다. 안락하고 평안한 부모의 품을 떠나기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이러한 아동의 불안을 심리학적 용어로 분리불안이라고 한다. 아동은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욕구와 어머니와 떨어지기 두려워하는 분리 불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두 욕구는 상반된 것으로 아동에게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가져온다.


딸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즈음에, 언니라고 불러줄 여자 동생도 없으면서 자기를 ‘작은 언니’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로부터 독립한 ‘언니’도 되고 싶고, 엄마에게 아직 아기처럼 안기고 업히고 싶은 갈등 상황에서 ‘작은 언니’로 자신을 자리매김한 내 아이가 분리불안을 이기고 엄마로부터 독립하여 성장하도록 잠자리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들려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것처럼 엄마가 떡을 다 호랑이에게 빼앗기고, 팔다리마저 떼어주고 떼굴떼굴 몸통으로 굴러오는 내용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의 이면에는 ‘엄마는 너에게 죽을힘을 다해서 가고자 했어.’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어쩔 수 없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지만…. 하지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누이가 호랑이에게 속기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마침내는 하늘로 올라가 처음엔 달이 되었다가 다시 해가 되어서 온 세상 사람을 비추고 있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딸아이가 엄마로부터 독립하여 고난을 겪고 나서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엄마로서 제일 두려운 꿈은 아이가 죽는 꿈이다. 아이로서 제일 무서운 꿈은 엄마가 죽는 꿈이다. 아이의 꿈에서 엄마가 죽는 것은 아이가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했다는 뜻이다.


아동의 심리적인 독립으로 말미암아 엄마가 죽는 이야기는 바로 ‘청개구리 이야기’이다. 청개구리 이야기는 “싫어”, “안 해”를 연발하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자율성 획득 시기에 관한 전래 동화이다.


아이가 ‘싫어’, ‘안 해’, ‘내 것이야.’를 입에 달고 살며, 엄마가 입어 넣어준 음식을 다시 뱉고 스스로 서투른 숟가락질을 하며 먹기 시작할 때, 아이의 심리적 독립은 시작된다.


아이가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다음의 발달 단계로 나아갔을 때 아이의 내면에서 엄마는 죽은 것이다. 청개구리 이야기에서 어머니가 사망했듯이 아동은 심리적으로 어머니를 죽여야 아동은 자율 감과 독립심을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은 아동이 창의적이 되는데 거쳐야 하는 길이다.


아이가 입학하면 ‘차라리 내가 학교에 가서 앉아 있는 게 낫겠다.’라고 한숨 쉬는 엄마들이 있다. 이보다 좀 나은 엄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며 눈물짓는 엄마들이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가끔 보면 아이가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보다 엄마가 아이를 독립시키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인다.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려면 엄마가 먼저 아이를 독립시켜야 한다. 아이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아이의 비밀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은 아들아이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았다. 건성으로 대답하던 아이가 ‘더 묻지 마. 말하기 싫어.’라고 말하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시시콜콜히 묻는 엄마에게 대답하기 싫어하는 그때가 올 때, 아이의 창의성은 자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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