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어 머무는 글

―― 각주를 벗어난 자리에서

by 시우

내 언어는 언제나 증명의 틀 속에 갇혀 있었다.
자료는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였고,
인용은 그 위에 겹겹이 덧대어졌다.
논증의 규격은 날마다 내 단어들을 재단했고,
그 속에서 내 삶은 늘 각주로 밀려나 있었다.

발언은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정제되었고,
고백은 사적이라는 이유로 삭제되었다.


나는 매일 문장을 쓰며
숫자로 말하고, 각주를 쌓고,

인용으로 스스로를 지탱했지만
그 문장 어디에도 내 삶은 머물지 못했다.


삶은 늘 서툴고 흔들리며 다가왔다.
뚜렷하지 않은 얼굴로 문을 두드리고,
설명할 길 없는 방식으로 곁에 와 앉았다.


빛이 꺼져가는 등잔불,
말끝에서 흩어지는 한숨,
새벽녘에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
이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없었으나,

언제나 내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사회과학 논문 속에서

그것들은 끝내 머물 자리를 얻지 못했다.

내 문장은 늘 정확해야 했으나,
삶은 언제나 불분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 불분명함을 사랑했으나,
내가 선택한 학문은 그것을 미완이라 불렀고,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학문이 불분명함을 결핍으로 단정할 때,
나는 오히려 그 미완 속에서 숨 쉬고 싶었다.


그 언어는 강물처럼 굽이치며 돌아가고,
때로는 고여 스스로를 비추었다.
급하지 않았으나, 오래 살아 있었다.
증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아주 작은 떨림조차 무의미하다 내던지지 않고
끝까지 귀 기울여 주었다.


그렇게 다툼없이 물처럼 흘렀다.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돌부리에 부딪히면 돌아 흘렀다.
빠르지 않았으나, 그래서 오래 머물렀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언어와 삶이 만나는 순간에는
인용 부호도, 괄호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만 타인의 기대와 생계의 무게 속에서
학문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했기에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빠른 시대 속에서 도태되는 길을 택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멀리 나아가는

제도권의 선택이 아니라
더 느리게, 더 여리게,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을.


빠름은 성과를 남기지만, 느림은 울림을 남긴다.
빠름은 사람을 경쟁으로 몰아넣지만,
느림은 사람을 다시 사람 곁으로 데려다 놓는다.

느린 문장은 누구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 머물러 함께 숨을 쉴 뿐이다.


논문이 치밀한 설계로

무너짐 없는 정교한 집을 세우는 일이라면,

내 글은 바람이 드나드는 마당이면 좋겠다.

머물다 떠나도, 스쳐가도 좋은 자리.

차 한 잔의 온기만 남아도

있는 그대로 충분한.


그러나 내가 몸담았던 글쓰기는 달랐다.

학문적 사유는 늘 개념과 범주로 세상을 묶으려 했고,

사회과학은 개인의 독백조차

사회적 의미를 담은 선언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선언이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대화가 아니라 침묵뿐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작은 방에 앉아

오늘의 질문을 곱씹고,

내일의 문장을 기다리고 싶다.


오늘 쓰는 문장이 실패라 해도 괜찮다.

내일 쓰는 문장이 다시 흔들린다 해도 좋다.

그 흔들림조차 삶의 일부이고,

나는 그 흔들림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고 싶다.


삶은 왜 학문에서 멀어져야 하는가.

학문은 왜 삶을 잊어야 하는가.

나는 여전히 묻는다.

그러나 이제는 답이 없어도 괜찮다.


질문은 머물기 위해 존재하고,

머무는 동안 삶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어느 저녁, 창문을 열어 두었을 때

서늘한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바람 속에는 먼 산의 냄새,

낯선 풀꽃의 향기,

어쩌면 누군가의 목소리까지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모든 문장은 결국 바람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창을 두드리고,

잠시 머물렀다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가는 바람.

그렇게 느린 언어는 바람이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스친다.

나는 그 바람이 되고 싶다.


나는 논문을 떠났으나

지식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다.

나는 다른 길을 걸으나

고백에만 머물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사람의 삶과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조용히 이어 주는 글을 쓰고 싶다.


빠름의 시대에 느림을 품은 언어,

성과의 시대에 울림을 남기는 언어,

증명의 시대에 질문을 살아 있게 하는 언어.

그리고 오늘의 글이 미완일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누군가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그것만으로 더할 나위 없는 충만함일 것이다.


By 時雨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