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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May 22. 2018

빌브라이슨 유럽 산책

그나저나 여행을 떠난 지가 꽤 오래되었다. 이번엔 어디로 떠나볼까나.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빌브라이슨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이 여행기가 나에게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행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만은, 여행은 나의 20대를 꽉 채운 주제 중 하나였다.


나는 여행 동아리에서 내 대학 시절의 전부를 보냈다. 대학 생활의 추억들을 떠올려보자면 동아리 여행을 떠나 밤새 이야기하고 놀던 순간들이 많고,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대학교 친구들도 거의 모두가 여행 동아리 사람들이다. 당시 여행을 엄청 좋아했던 건 아니었지만, 친구 따라 발을 들이게 되어 떠났던 첫 여행이 시발점이 되어, 시간과 형편이 허락할 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나도 여행 덕분에 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빌 브라이슨이 심심한 도시 함메르페스트에서 잠시나마 은퇴 후의 삶을 체험하며 지난날 아버지의 하루에 공감하게 된 것처럼, 나도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삶을 통해 혼자가 되어 무료하고도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동상이 걸릴까 봐 걱정이 되면서도 오로라를 바라보는 그 자리를 도저히 뜰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을 읽어내려가면서, 입을 벌린 채 눈으로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오롯이 담던 순간을 떠올렸다. 굳이 고생을 하겠다며 비행기가 아닌 야간 버스와 배를 타고 10시간 이상씩 이동하며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기도 했으며, 베를린에선 연속으로 소매치기를 당해, 호스텔에서 얻은 종이 지도 한 장을 가지고 걸어서 여행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나 값지고 소중할 따름이다.


한 때는 여행이란 걸 ‘정의’하려고 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여행이란 무엇이고, ‘내게 맞는 여행이란 무엇일까’라며 기준을 세우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여행 동아리를 할 때에는 동아리 후배들한테는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같이 가느냐도 중요하다’와 같은 말을 뱉으며 한껏 있어 보이는 척을 하려고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해진 답은 없고, 그저 모든 여행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며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구나 싶다. 정말 볼품없는 곳이었지만 같이 간 친구들과의 시간이 너무 좋아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던 적이 있고, 나 홀로 떠난 여행을 통해 솔직하게 나 자신과 마주하며 생각을 정리했던 여행도 있다. 자연경관에 푹 빠져 아이슬란드와 몽골 같은 여행지만 고집했으면서도, 번화가의 시끌벅적한 느낌과 맛집과 쇼핑거리를 거닐었던 여행도 역시나 좋았다. 단벌의 옷에 식빵 한 봉지와 누텔라 잼으로 하루를 버텼던 추억에 웃음이 피식 나면서도, 캐리어를 꽉 채운 채 맘에 드는 옷을 입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던 여행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어떻게든 여행은 내 삶을 충만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때로는 사람을, 때로는 자아를, 때로는 휴식을, 때로는 겸손함을 주면서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서 주인공들은 나침반 하나만을 가지고 무모한 여행을 시작하지만, 결국 목표한 바를 하나하나씩 이루어 나간다. 최대 위기의 순간에서도 그들은 결국 세븐시스터즈의 등대에 이르러 마지막 목표를 완수한다. 두 번째 보는 영화임에도 그들의 열정과 도전에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여행이란 영화 속 여행의 시작이었던 ‘나침반’과 그 끝이었던 세븐시스터즈의 ‘등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 내 마음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소리 없이 넌지시 알려주는 것. 비록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


그나저나 여행을 떠난 지가 꽤 오래되었다. 이번엔 어디로 떠나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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