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는 왜 기타를 가지고 있었을까?
등을 돌리고 않은 현아의 모습,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두 갈래로 쫑쫑 땋은 머리를 한 어린 현아는 기타를 만지고 있었다. 그 손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이랬다. 한 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길이고 방바닥이고 간에 두 발을 엉덩이에 바깥으로 붙이고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눈썹과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쭉 내밀고 말이다. 고집 피우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정말 못난이 삼 형제 중 하나다. 어릴 때는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데, 사회생활 중에 그 고집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고집불통의 나는 어디로 가고 남들이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하면서 살아왔을까?
지난번 만났을 때, 현아는 이야기 나누기를 거부했다. 현아의 매몰차게 찬 대화 단절 선언에 섣불리 다시 말을 걸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이 있었지만 역시나 나는 변화가 없다. 오늘도 이런저런 일로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현아와 이야기가 너무 하고 싶어 진다. 현관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12시를 가리키는 핸드폰의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분명히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님을 알면서도 직장을 다닐 때나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일을 하는 지금까지도 내 삶은 변화가 없다. 매일매일이 일과의 전쟁이다. 그렇게 지긋지긋해했던 삶을 지금 그대로 살고 있다. 이렇게 살려고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닌데, 지금까지도 나는 아무런 변화 없이 똑 같이 산다. 내가 바라는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아니다. 무언가 조금 진지한 일을 하면서 여유 있고 싶은데 그런 삶은 어디로 갔는지 눈을 닦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한 번도 여유 있는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지금의 삶이 아닌 건 알지만 또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다는 게 더 문제다.
그 방법을 알아보려고 현아를 불렀지만 현아는 화만 낸다.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현아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 싶지만 한편으로 보면 화를 내기보다는 측은해하거나 애처롭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50이 넘어서도 아직도 제 삶 하나를 제대로 살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보면 말이다. 도대체 현아는 왜 화가 난 것일까? 과연 내 속에 있는 현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직접 물어본다고 답을 해 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답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내 성미에 맞지 않고,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전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글이라도 써서 보내볼까? 내면에 있는 나에게 내가 쓰는 편지라… 참 그것도 희한하기는 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뭐라고 하는지, 편지라도 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