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앱 Apr 14. 2021

여행지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레드컬튼X랜선관극] 연극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공연실황 리뷰

낯선 대상을 접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미묘한 구석이 있다. 불확실성과 미지의 영역 앞에서 막연한 긴장감이 들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관심이나 호감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난생 처음 가본 여행지에서의 일상이나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그렇다. 연극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바로 이 두 가지 상황을 뭉뚱그리면서 짧지만 가볍지 않은 서사를 이끌어 간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남녀 이야기'이고, 조금 더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남녀 이야기'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전자와 후자의 뉘앙스 사이 간극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서사를 '용감하고 로맨틱한 진실된 사랑'이라고 평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가족을 배신한 바람둥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은행원으로 일하는 중년 남성 드미트리치, 그리고 젊은 나이에 결혼한 여성 안나다. 각자 배우자를 두고 흑해 연안의 휴양지 얄타에서 홀로 휴가를 보내던 이들은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이전에도 외도를 '밥 먹듯' 해온 드미트리치는 안나에게 애정을 느끼고, 안나 역시 이런 그가 싫지 않다. 두 사람은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며 서로 빠져드는데, 안나는 갑작스런 남편의 병환 소식에 기차를 타고 떠난다. 이후에도 안나를 잊지 못한 드미트리치는 안나가 사는 도시로 가 그녀와 재회하고, 둘의 관계는 위태롭게 지속된다.

안톤 체홉의 1899년작 동명 단편을 40분 남짓한 연극으로 담아낸 공연은 중간중간 상당 부분을 빈 칸으로 남겨둔다. 드미트리치와 안나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잠깐 만나는 와중에 마음이 커져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렇다. 말하자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라고 볼 수는 없는 셈이다.



관객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지만 정작 이 작품이 방점을 찍는 부분은 따로 있다. 드미트리치와 안나의 관계가 서로를 향해 자석처럼 끌린다기보다, 자신을 옭아매 온 것들을 밀어낸 결과로 읽힌다는 점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내내 객석을 향해 독백 아닌 독백을 이어가는 드미트리치의 대사들은 인상적이다. "지루한 곳에 있으면 지루함의 일부가 된다"라는 대사처럼, 드미트리치의 여성편력은 자신을 둘러싼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다.


이런 드미트리치와 비교해 안나는 좀더 현실적이다. 그녀는 외도를 저지르는 자신을 두고 "남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배반한 것"이라고 말하고, "저속하고 타락한 경멸스러운 여자"라며 자학한다. 시간이 흘러 재회한 드미트리치가 본격적으로 구애하는 순간에도 '그저 그런' 남편과의 생활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불행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일은 없을 것"이란 말대로, 안나는 자신의 인생을 틀 속에 가두려 한다.

결국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말하는 건 궁극적으로 '주도적 삶'에 대해서다.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궤적과 사회적 평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묻고, 나아가 불확실성과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 용기가 있는지 묻는다. 드미트리치와 안나의 이야기가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미래는 약속된 해피엔딩이 아니라, 언제까지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소중하니까.



연극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연출: 최재호

출연배우: 이음, 김진근

제작: 애플씨어터

공연일시: 2019년 12월 2일

공연장소: 안똔체홉극장


*연극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실황 영상은 '레드컬튼프리뷰X플앱'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PL@Y2(레드컬튼 프리뷰) 앱 바로가기


애플 앱스토어: https://apple.co/3rrr6S1

구글 플레이스토어: https://bit.ly/3rrWPCO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단편소설의 가장 '트렌디'한 2차 창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