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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Apr 11. 2024

낙원상가 지하에 숨은 보쌈 맛집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선희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선희네

숨겨진 보쌈 맛집을 찾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어? 싶은 곳에 마침 보쌈집이 있다면 도파민이 줄줄 흘러나온다.


안동집 손칼국시가 그렇고 전주김제맛집이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장 안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이버에 쳐도 잘 나오지 않고 어떻게 보면 지저분하기도 하고, 투박하게 내놓은 음식들인데 맛있다. 특유의 맛과 분위기가 맛집이라는 칭호를 붙이게 하는 이유인 집들이다.


오늘 소개할 집도 그렇다. 이 집은 낙원상가 지하 낙원시장의 식당 중 하나다. 낙원상가 지하에 식당이 있다고? 그렇다. 악기를 파는 이곳 밑에는 식당이 즐비하다. '여기에 왜 식당이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은 네이버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게를 찾아가는 설명이 상세해야 할 것 같다. 낙원상가 지하는 입구가 여러 개 있고 찾아가기가 은근히 힘들다.


종로3가역 5호선 5번 출구를 나오면 국밥거리가 보인다. 그쪽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낙원시장 7번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길을 건널 필요도 없다. 그냥 출구를 나와서 앞으로 쭉 직진만 하면 낙원상가 밑 낙원시장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입구를 들어가면 지하가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면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이 나오고 조금 더 들어가면 웬 마트가 하나 보인다. 그 마트가 나오면 제대로 왔다. 바로 옆에 오늘 소개할 '선희네'다.


이 집은 어디까지가 가게인지 모를 만큼 열린 공간에 있다. 당황하지 않고 이모한테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 주신다.


손님의 연령대는 60~70대가 대부분이다. 2030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 드신 분들이 혼자 오시거나, 친구분과 와서 소주와 막걸리를 드시며 회포를 푼다. 맛있는 집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면,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메뉴판에는 보쌈이 없다. 그런데 왜 보쌈 맛집일까. 메뉴에도 없는 메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은 메뉴에 없는 메뉴가 꽤 있다. 그중 명물이 수육과 보쌈김치다. 주위를 둘러보면 할아버지들, 아저씨들이 다 수육에 막걸리, 수육에 소주를 먹고 있다. 메뉴에도 없는데 말이다.


불안하다면 미리 전화를 해서 수육을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된다. 따로 예약 같은 건 받지 않으신다. 수육 외에 오리고기, 삼겹살 등 미리 주문을 하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꽤 있다고 들었다.


이모한테 찾아가 속닥속닥 "수육 주세요"하면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동안 다른 음식을 맛본다. 두부도 단돈 7000원에 먹을 수 있고, 잔치국수 등 국수류도 많다. 이모가 배고플까 봐 잔치국수도 조그만 그릇에 담아서 주신다. 최고다.


국수와 두부를 먹으며 소주를 몇 잔 기울이다 보면 "조금만 늦게 주세요~"라고 부탁드린 수육이 나온다. 고기가 모자라면 그 자리에서 삶아서 주시는 것 같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는 어디선가 갑자기 배추와 갓 무친듯한 무김치가 나온다. 가져다주는 이모는 처음 보는 분이다. 옆 가게에서 오셨다. 옆 가게의 이름도 선희네다. 하지만 그곳은 각종 반찬류를 취급하는 것 같다. 한 지붕 두 가족 느낌이다.


따뜻하게 잘 삶아서 나온 고기도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선희네 보쌈한상

이 집 고기는 앞다리살(전지)로 추정된다. 색깔은 하얗기보다는 진한 편이고 그렇다고 갈색빛을 띠지는 않는다. 향이 강하지도 않고 조잡스럽게 꾸며낸 느낌도 없다.


식감을 설명하자면 특이한 편이다. 전주김제맛집이랑 상당히 비슷하다. 쫄깃쫄깃하다. 물에 삶아냈는데 수증기에 삶아낸 전주김제맛집이랑 비슷한 식감이 나는 것도 신기하다. 자칫 질길 수도 있는데 그 선을 넘지 않고 쫄깃함을 유지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식감이 더 강해진다.


육향은 어떤가. 잡내는 없다. 돼지고기 특유의 향은 남아있다. 투박하다. 어떻게 보면 거칠기도 하다.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는 맛이지만, 내게는 재미를 선사한다. 쫄깃해서 씹을수록 더해지는 식감에 은은히 육향이 퍼진다. 입안에서 '나는 돼지고기입니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선희네 김치

그렇다면 김치는 어떨까. 이 집 김치는 엄밀히 말하면 보쌈김치가 아니다. 배추와 속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김장김치에 가깝다. 김장한 날에 생배추에 싸 먹는 김치 느낌이다. 더 정확하게 파고 들어가면 김장하는 날 속을 먼저 만들고 그 속을 고기와 먹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저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갓 담가 나온 김장속 같다. 그래서 재료의 향이 다 살아있다. 일단 젓갈향이 가득 나는 아랫지방 김치는 아니다. 시원한 맛이 나고 단맛은 좀 덜하다. 과일을 많이 갈아 넣거나 하지는 않으신 듯하다.


그래서 쫄깃하고 육향이 은은히 번지는 고기와 잘 어울린다. 둘의 맛이 나를 자극하지는 않지만, 툭툭 내 혀를 쳐댄다. 평양냉면의 단조로움과도 비슷하다. 한입씩 먹다 보면 즐거움이 느껴진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선희네 잔치국수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다. 보쌈, 두부, 술을 잔뜩 먹어도 3만원대라니. 내가 볼 땐 사장님이 계산을 잘못하신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남는 게 있을지 의문이다.


잔치국수까지 그냥 주신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거스름돈 받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여러 음식을 맛있게 맛볼 수 있다는 것. 이 집은 보쌈 말고도 닭볶음탕이 유명하다고 한다. 아직 맛보지 못해서 평가를 내릴 수 없지만, 다음에는 닭볶음탕도 먹어보고 싶다.


국수는 혹시라도 가게 되면 꼭 시켜서 먹으면 좋겠다. 국물이 정말 깊고 맛있다. 같이 간 친구는 국수를 너무 맛있게 국물까지 다 먹어버렸다. 보쌈을 오래 꺼내놨을 때 뻑뻑해지면 국물에 잠시 담갔다가 먹는 것도 방법이다.


이모들의 정겨움도 한 몫한다. 바쁘신 중에도 챙겨주는 마음 덕에 그리 뛰어난 맛이 아님에도 맛집이 되어버린다. 옆집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김치, 맥주 따개를 찾지 못하자 숟가락으로 따주겠다는 옆자리 할아버지. 정겨움이 묻어 나오는 그런 곳이다.


숨겨져 있는, 낙원상가 지하에 있는 보쌈 맛집, 선희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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