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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을 만들 때 삶는 시간이 중요한 이유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박쌈

by 가위바위보쌈

사람들은 보쌈을 쉽게 생각한다. 이것저것 냄새 빼는 재료를 넣고 그냥 몇 분 동안 팔팔 끓이면 되는 거 아닌가.


양파 넣고 마늘 넣고 파 넣고 된장 넣고 커피 넣고 월계잎 넣고. 그렇게 해서 냄새나는 보쌈이 있으면 말이 안 된다. 저렇게까지 재료를 많이 넣었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재료는 부수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팔팔 끓인다는 건 도대체 몇 분을 말하는 걸까. 40분? 50분?


여러 차례 보쌈을 먹어보고, 만들어본 결과 보쌈은 절대로 쉬운 음식이 아니다. 그냥 이것저것 냄새 빼는 재료들 다 갖다 넣어서 팔팔 끓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저렇게 재료를 온갖 것 다 넣어서 끓이면 돼지 특유의 향은 사라지게 된다. 그럼 보쌈을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냄새 없는 부드러운 종이 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저 중에 몇 개는 사실상 필요 없고 어쩔 땐 저기서 하나만 넣어도 될 정도로 좋은 고기가 가득한데 왜 불필요하게 재료를 많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재료를 어떻게 넣었든 간에 삶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삶는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투자하면 '오버쿡'이 되고 너무 적게 하면 설익게 된다. 적당한 시간에 딱 건져내고 육즙을 머금을 수 있게 식혀줘야 부드러운 고기가 된다. 보쌈 먹으면서 질긴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어떤 재료를 넣을지, 얼마나 공들여 삶을 지를 정해야 보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보쌈을 메뉴로 가게를 꾸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약간의 삶는 시간 차이, 약간의 재료 차이로 보쌈 맛은 확연하게 달라지기에 보쌈으로 가게를 만드는 사람들한텐 존경심까지 든다.


오늘 소개할 집은 적어도 그런 노력을 위해 연구한 흔적이 돋보이는 집이다.


이 집은 8호선 몽촌토성역이나 2·8호선 잠실역, 아니면 9호선 잠실역으로 나와 방이먹자골목으로 들어오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본래는 방이먹자골목 메인거리에 있었는데 몇 해 전 가게를 넓히면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왔다. 내부 디자인이나 메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집의 가게 문은 미닫이문이다. 문을 옆으로 열고 들어가면 널따란 가게가 나온다. 테이블은 기존 가게보다 훨씬 많아졌다. 단체로 회식을 하기도 좋은 곳이고, 연말에 이 가게를 찾았을 때 회식하는 테이블이 여럿 있었다. TV도 있어서 축구나 야구 경기가 있을 때 이곳을 찾아서 다 같이 경기를 관람해도 좋을 것 같다.

KakaoTalk_20250109_101500176_06.jpg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박쌈 메뉴판

이 집의 메뉴는 꽤 다양한 편이다. 허브보쌈이 대표적이고 그 보쌈과 함께 골뱅이, 주꾸미, 매콤불고기, 육전, 홍합탕 등을 판다. 두 메뉴를 묶어서 세트로도 파는데 여러 명이서 먹을 거면 세트로 주문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집의 이름이 '대박쌈'인 만큼 자리에 앉아서 허브보쌈을 주문한다. 주문 후에는 자리에 반찬과 국이 차려진다. 국은 양은냄비에 담겨 나오는 콩나물국이고 반찬은 잡채와 새우젓, 쌈장, 마늘과 고추다. 흡사 집에서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반찬과 국이 나와서 입맛을 돋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화로에 담긴 고기, 그리고 정갈하게 담긴 김치들이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KakaoTalk_20250109_101500176_05.jpg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박쌈 허브보쌈과 김치

이 집의 고기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유는 하나다. 삶는 시간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다른 날에 갔을 때는 고기의 부드러움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다시 적자면, 이 집의 고기는 '어느 때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만큼 어려운 고기를 만드신다. 삼겹살이라는 부위를 보쌈으로 만들어서 저렇게 얇게 썰었다면 고기가 당연히 부드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금방 육즙이 날아갈 수 있다. 그만큼 공기와 접촉하는 부분이 전체 비중에서 많아지기 때문이다.


고기를 얇게 썬 것은 아마도 허브 향을 고루 느끼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통으로 삶은 고기를 썰어서 다시 한번 데우는 구조인데 자칫 이 과정에서 육즙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는' 고기가 퍽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로 안에 물을 넣어서 수분을 좀 보충해 준다면 이 집의 고기는 금세 부드러워진다. 고기 자체를 잘못 삶은 게 아니라 물이 마를 정도로 얇게 썰어서 '화로'라는 구조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빨리 퍽퍽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만 더 두껍게 썰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상당히 부드러울 텐데. 삶는 시간이 이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맛이다. 조금만 덜 삶았다면, 아니면 물을 더 넣고 삶을 수 있었다면, 아니면 화로를 바꿨다면. 이 퍽퍽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맛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향이 강한 허브를 썼기 때문에 돼지 잡내가 날 리가 없다. 하지만 다른 가게와 비교했을 때 특출 나게 뛰어난 맛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기는 힘들다. 나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이다.

KakaoTalk_20250109_101500176_01.jpg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박쌈 김치

이 집 김치의 구성은 두 가지다. 무김치와 절인 백김치다.


평가하기에는 보쌈김치가 아니라서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김치 자체는 나쁘지 않다. 특히 저 백김치는 나름대로 먹을만한 맛이다. 고기와 어울리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무김치와 같이 싸서 먹으면 꽤 괜찮은 맛이다. 거기에 약간 더 부드럽게 만든 고기를 올려 먹으면 나름의 보쌈이 완성된다.


이 집은 2% 부족한, 약간만 더 채웠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 집이다.


KakaoTalk_20250109_101500176_03.jpg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박쌈 매콤불고기

이 집의 킥은 이 '매콤불고기'다.


보쌈은 보쌈대로 그럴싸하지만, 매콤불고기는 꽤나 맛있다. 계속 손이 가는 맛이다. 간을 잘 맞춘 듯 입을 당기는 맛이 있으며 밥 한 공기를 뚝딱 할 수 있을 정도의 맛이다.


고기의 질감도 괜찮을뿐더러 양념이 잘 배어 있어서 먹고 먹고 또 먹게 된다. 보쌈보다도 매콤불고기가 다른 지인들한테 더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배부름을 떠안고 가게 밖으로 나가게 되면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차는 지나다니고 취객은 거리를 거닐고 있다. 이 틈에서 2차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주변에 오래 장수한 도톤보리라는 이자카야도 있고, 바로 옆에 꽤나 맛있는 야키토리 잔잔도 있다.


고기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었으면 어떨까. 이 집은 사장님께서 직접 오랜 기간 고기를 바로 삶아서 내놓는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부드러움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가끔 술 한잔에 보쌈이 먹고 싶을 땐 다시 찾을 것 같다.


보쌈을 만들 때 삶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 준 집, 대박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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