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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Mar 01. 2022

싱어게인 & 술어게인

나는 내 아들이 어젯밤 한 일을 알고 있다.

거실. TV.

싱어게인2 결승이다. 

모든 가수들의 노래도 끝나고, 문자투표결과가 합산되어 

이승기가 최종 순위를 발표하려는 그 순간!

아들의 전화가 왔다. 


“아빠, 태…시가 안 잡혀…서 그런…”

혀가 꼬부라져 있다.

“술 많이 마셨어? 어디야?”

“여…기 디디피…여기데 14…번 추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알았어! 밝은 데로 나와서 기다려!”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추리닝 바람에 대강 외투만 걸치고 나와

차를 몰고 DDP,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내달렸다. . 


14번 출구앞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너 안보이는데 어디야? 여기는 14번 출구. 디디피 건너편인데 너 안보여!”

“아, 여기…디디피 쪽이야. 어…어… 근데…화자실… 화자실가아…”

“야…! 디디피 어디? 어디 화장실? 역 안?”

잠시 뒤, 전화기로 흘러나오는 괴성!

“카~악! 카~악! 끄아아아~악! 쾌~애애악!”

“어디야? 어디 화장실이야? 역 안에 있어?”

게워내는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다시 조용하다. 

“일단 반대편으로 가깨. 거기 어디야?”

전화기는 켜져 있는 것 같은데 아들 목소리는 없다. 


다시 급하게 차를 몰고 유턴을 해서 DDP 앞으로 갔다. 

“아들! 어디 있어? 어디야? 아빠 차 안 보여?”

핸드폰 너머 아들의 답은 없고 계속 이상한 잡음만 들린다. 

물이 새는 소리 같기도 하고, 차가 지나는 소리도 살짝 들리고,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도 나고.

“어디니? 아빠 목소리 안 들려? 전화기를 들어! 들고 얘기를 해! 아들!”

전화가 끊기지는 않아 잡음들이 들리는데, 여전히 아들의 목소리는 없다..


변기를 붙잡고 주저앉아 있는 건가?

바닥에 쓰러졌나?

정신을 잃었나?

핸드폰으로 계속 아들을 부르며 

정신차려! 자면 안돼! 전화기 들어! 어디야!를 외치며 

DDP주변을 차로 돌며 창밖을 살폈다. 

길가엔 밤 12시가 다 되어 집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겨울밤 술취해 길가에 뻗어 자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사례들이 생각났다. 

오늘 날이 많이 플렸다지만, 밤이면 영하로 내려 갈수도 있는데…!

아니, 지 몸뚱아리 하나로 밥벌어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놈이…!

몸관리한다고 헬스장 다니면서 술을 이렇게 퍼 마시면 뭔 소용이야!

걱정도 되었다가, 화도 났다가, 실망도 했다가, 우려도 했다가…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차로는 아들 있는 곳에 닿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DDP앞 큰 길가에 급히 차를 세웠다. 

분명 딱지를 떼일 곳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비상등을 켜 놓고 차를 나와 DDP앞을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역으로 내달렸다. 

역 안 화장실이 제일 유력했다. 


근데…뛰던 중에 갑자기 핸드폰이 내 뜀박질을 멈추게 했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귀에 바짝 대고 있던 터였다.

 “곧이어 OO번 버스가 도착합니다”

알아듣지 못할 소음들 사이에서 들린 분명한 사람 소리!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검은 실루엣.

그들 사이, 벤치가 보였다. 

그리고 벤치에 대자로 널부러져 누워있는 노숙자 아니, 아들을 보았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기서 자고 있으면 어떡하니? 집에 가자”

축 늘어져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들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버…어… 꺼억… 커억…”

“속 불편해? 오바이트 할래?”

“좀 있…다…”

“야!”

아들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차 안에다 할거야? 화장실에 가서 오바이트 하고 타!” 

“아니.. 괜찮아… 가…요…”


아들은 차에 타자마자 의자를 젖히곤 마스크를 눈쪽으로 끌어올려 안대삼아 쓴다.

그리곤 잔다.

혹시나 속이 불편해 질까봐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속도방지턱은 최대한 스무스하게 넘었고, 코너는 거의 기다시피 살살 돌았다. 

20분이면 도착했을 아파트 주차장까지 30분이 걸렸다. 


“내려, 집에 왔다. 가자”

“아…바… 좀 있…다… 좀…자…다…”

일어나기 힘든 가보다. 

어떡하나?

술취한 놈을 혼자 차 안에 둬도 되나? 안 추울까? 

창문을 꼭 닫아두면 공기가 나빠져 안 좋을텐데…?


잠깐 망설이다, 앞 양쪽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나왔다. 

지금 온도는 7.2도씨. 

얼어죽진 않겠군…


아들은 거의 한시간을 차에서 자다 좀 전에 들어왔다.

우루사 한알과 물을 가져다 줬다. 

힘겹게 입에 털어넣고 다시 침대에 쓰러진다. 


휴… 


술 많이 마시면 힘들고 몸 상하고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X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나?


...뭐, 나도 할 말은 없다.

젊은 날, 꼭 술 먹고 게워내거나 사고를 쳤던 뒤에야 비로소 술을 알게 되었으니…쩝.


덧붙이는 말) 

아침에 어제의 1위곡을 확인하며 다시 노래를 듣는데, 

어찌 어제의 딱 내 이야기같다. 아니 아들 이야기인가…?


빨간 석양이 물들어가면 /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20220228~20220301

노래가사가 내 삶 같은 놀자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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