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Dec 13. 2023

MZ직원 꼰대CEO

연봉협상면담

취중진담 : 술에 취한 동안 털어놓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

바야흐로 직원평가와 연봉 재계약의 시기가 도래했다

이번에는 좀 색다른 면담을 해보고 싶어서 직원들에게 아래 중 1개를 선택하라고 공지했다.

아! 오해할까 봐 미리 얘기해 두는데 우리 회사 특성상 업무시간엔 면담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 중에 다이어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점심을 안 먹는 친구들이 있다.

1. 점심시간에 그냥 면담

2. 점심 먹으며 면담

3. 저녁시간에 그냥 면담

4. 저녁 먹으며 면담

신청 결과는 골고루 다양하게 나왔고 바로 어제부터 면담에 돌입했다.


2023년 12월 12일

4번을 선택한 B대리는 여러 명이 투입된 다른 프로젝트와는 다르게 달랑 혼자만 투입되어 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많긴 하지만 소속이 달라서 '혹여라도 외롭진 않을까' '남들보다 더 많은 업무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을 했었더랬다.

그런 와중에 그 나이 때 나였다면 안 할 것만 같은 대표와 단둘만의 저녁식사 면담을 선택한 걸 보고는 내심 반가웠다.

평소 조용하고 표정변화가 없는 친구라 술 한잔 곁들이면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원한다고 생각했기에 센스 좀 있는 편인 나는 과감히 차.없.이. 출근했다.

(참고로 우리집과 회사를 오가는 대중교통편 없다)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그녀의 의견을 수렴하여 마곡에서 요즘 핫하다는 분위기 있는 파스타집에 도착!

메뉴판을 보고 파스타 2개와 고르곤졸라 피자를 선택한 후

" 술은 뭘루 할까? "

" 대표님. 저 치과치료 중이라서요. 전 제주청귤에이드요"

" ..........................  술 못 마시는데 저녁식사 면담 신청한 거야?"

"네. 대표님과 언제 이런 시간 가져 보겠어요"

" ........... 그럼 나는.. 얼그레이 하이볼 마실래"

"와! 저도 그게 제일 마시고 싶었어요. 부러워요!"

"헐… 치과치료 끝나면 사 먹으렴"

"네 ^___^"


비록 나 혼자 술을 마시게 된 일방적 취중면담이었지만 B대리 입사 4년 만에 첨으로 단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새로운 사내 소모임을 결성하기로 약속한 후 헤어졌다.

내일은 점심식사 면담이 있다. 그 아이는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친구인데 왜 점심식사 면담이지?

얘도 치과 다니나? ^^;;;;;


요즘은 더더욱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고 직원들은 언제든 회사를 옮길 수 있다.

한 회사를 10년 다니고도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것보다 1년 다녔지만 꽤 멋지게 성장한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은 나의 비밀스럽고 발칙한 열망이

내일의 면담 또한 설레어지게 만드는 바로 그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OTT 품앗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