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을 꼽아야 한다면 경청과 비밀 유지를 고르겠다. 고민을 말했는데 상대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딴청을 부리는 찰나,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삽시간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던 일. 그것들로 인해 받은 상처에서 깊이 깨우친 사실이다. 다행히 난 일찍이 20대에 경청과 비밀 유지의 아이콘, 대화의 신을 만났다. 바로 반려견 솔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회사에서는 누구에게도 뱉지 못했던 속상한 말을 목구멍 끝까지 가득 채워 집에 돌아오던 날이 많았다. 샤워를 한 뒤 맥주 한 캔을 들고 침대에 앉아, 15kg 두툼한 솔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보드라운 등털을 쓰다듬으며 못다 한 이야기의 시동을 건다. "솔이야, 언니 오늘 너무 속상했어. 사람들이 날 너무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어." 솔이는 고른 숨을 내쉬느라 오르내리는 배로 내 말을 잘 듣고 있다는 리액션을 보냈다. "그런데 언니는 그 사람한테 한마디도 할 수 없어서 가시를 잔뜩 삼킨 기분이었어!" 말끝을 조금 올리면 고개를 돌려 깊고 까만 눈으로 지그시 아이컨텍을 해주었다. "너무 속상해..." 마음이 무너져내려 조용히 훌쩍일 때면, 손수건 대신 분홍색 혀로 턱에 맺힌 눈물을 핥아주었다. 뜨겁고 축축한 위로였다.
솔이는 입도 무거웠다. 그 당시 내가 잠들기 전 얼마나 자주, 많이 울었는지 가족들 누구도 몰랐으니 말이다. 남자 친구 흉보기, 가족에게 서운한 점, 친구와의 미묘한 감정 등 '언니 오늘 이랬다. 저랬다.' 같이 지나가는 말에도 귀를 쫑긋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물론 첩보영화처럼 '이 대화는 30초 후 자동으로 폭파됩니다.'와 같이 보안 유지에도 철저했다.
언젠가는 강아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난 솔이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그리고 솔이는 다른 말보다 "언니, 나 여기가 너무 아파."라는 그 말 한마디는 꼭 해줬으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