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리더의 글 읽기
☕안녕하세요, Dr. Jin,입니다.
오늘 소개할 글은 HP의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조직인 HP Tech Ventures의 수장, Andrew Bolwell이 Medium의 'Megatrends by HP' 채널에 기고한 아티클입니다. 제목은 「The CVC Problem Nobody Talks About — and How AI Agents Solve It」, 즉 "아무도 말하지 않는 CVC의 문제, 그리고 AI 에이전트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2025년 3월 초에 발행된 따끈따끈한 글이고, 조회수는 많지 않지만 내용의 밀도가 높아서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CVC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전략적 정보 처리의 병목'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것을 '사람을 더 뽑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화된 AI 에이전트 팀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점이죠. 저도 여러 CVC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관찰해온 입장에서, 이 글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우리 혁신 생태계에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CVC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 — 왜 CVC는 짧은 수명으로 끝나는가
② 실제 현장 사례 — HP Tech Ventures에서 AI 에이전트가 작동하는 방식
③ 시스템 아키텍처 — 구조화된 지식 베이스와 특화 에이전트들의 협업
④ 구축 과정에서 배운 것들 — 실무적 교훈 5가지
⑤ Dr. Jin의 평가 및 시사점 — 우리 혁신 생태계 관점에서의 함의
Bolwell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CVC의 문제는 딜플로우(deal flow)나 자본 부족이 아니라고요. 모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략적 인텔리전스 엔진이 되는 것, 즉 시장 선견력과 전략적 인사이트, 그리고 외부 혁신을 내부 성장으로 연결하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2025년 기준, AI 분야는 글로벌 VC 전체 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2,0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매주 새로운 스타트업, 펀딩 라운드, 시장 신호, 경쟁 구도 변화가 쏟아집니다. 소수의 팀이 이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화하고, 전략적 행동으로 전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CVC가 다른 어떤 조직보다 이 문제에 취약한 이유입니다. 순수 재무 VC와 달리, CVC는 이중 임무(dual mandate)를 짊어집니다. 좋은 투자를 찾는 것, 그리고 동시에 모기업에 전략적 가치를 제공하는 것. 그중 두 번째가 유독 어렵습니다. 『Masters of Corporate Venture Capital』에서 한 실무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합한 기업을 찾는 것은 쉬운 부분이다. 진짜 어려운 건 대기업 안을 헤쳐 나가며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숫자는 냉혹합니다. 평균 CVC 프로그램의 생존 기간은 4년 미만입니다. 벤처 투자가 결실을 맺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CVC는 수확기에 닿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셈이죠. 그 이유가 투자 실패 때문이냐고요? 아닙니다. McKinsey, Bain, Stanford, INSEAD의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실패 원인은 이렇습니다:
① 전략적 임팩트의 부재
CVC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전략적 가치를 내부에 설득하지 못합니다. 분기마다 임원들에게 '우리가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조직 — 그것이 CVC의 현실입니다.
② 산발적 소싱(Sporadic Sourcing)
McKinsey는 CVC 활동의 70% 이상이 산발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체계적인 시장 스캐닝 없이, 그때그때 들어오는 딜만 처리하는 방식으로는 선제적 투자가 불가능합니다.
③ 전략적 미션 드리프트(Mission Drift)
Stanford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CVC는 모기업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바뀔 때 이를 자신의 활동에 빠르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모기업의 전략이 AI로 피벗하는데, CVC는 여전히 클라우드 인프라 스타트업만 보고 있는 상황이죠.
④ 인사이트가 문서 속에 묻힘
대부분의 CVC 인텔리전스는 어딘가에 저장된 보고서 속에서 죽어갑니다. 누군가 검색해서 꺼내기 전까지는요. 회의 브리핑, 시장 분석, 미팅 후기... 이런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조직의 집단 지성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⑤ 인력 교체 시 지식 유실
Bain은 최근 3년간 활동 중인 CVC의 3분의 1이 축소되거나 폐쇄되었다고 밝힙니다. 팀 멤버가 바뀌거나 리더십이 교체되면, 그동안 쌓아온 시장 지식과 스타트업 분석, 인사이트가 함께 사라집니다.
⑥ 이해관계자 소통의 부재
INSEAD 연구에 따르면, CVC 모기업의 고위 임원 61%가 벤처 캐피털의 특성과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CVC가 '블랙박스'로 남아있는 한, 조직 내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Bolwell은 이 6가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전문화된 AI 에이전트 팀을 구축했다고 밝힙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구체적인 사례를 먼저 보겠습니다.
HP Tech Ventures 팀은 엣지 추론(Edge Inference) 트렌드 — AI 워크로드가 클라우드에서 온디바이스(On-Device) 처리로 이동하는 흐름 — 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관련 아티클, 팟캐스트,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캡처하고 태깅해두었는데요.
팀이 구축한 Intel Digest 에이전트가 이 하이라이트들을 수집했습니다. HP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이미 추적 중이던 관련 시그널들과 클러스터링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파이프라인에 이미 있던 여러 스타트업들이 동일한 신흥 기회의 일부였는데, 팀은 그 연결고리를 이전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거죠.
에이전트는 자동으로:
해당 트렌드와 관련 스타트업을 묶은 테마 브리핑을 생성했고
트렌드와 관련 스타트업을 HP 특정 사업부와 연결하는 독립 인사이트 노트를 작성했으며
후속 액션을 만들었습니다: 관련 스타트업 프로파일 업데이트, AI PC팀에 플래그 지정, 투자 아웃리치를 위한 모니터링 대상 분류
이 일련의 과정 — 리서치 → 합성 → 교차 참조 → 액션 — 은 예전에는 수십 개의 브라우저 탭과 이메일 스레드, 흩어진 노트들을 뒤지며 며칠이 걸리는 수작업이었습니다. 이제는 팀이 실제로 사람의 판단력이 필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동안 자동으로 처리됩니다.
현재 HP Tech Ventures의 플랫폼은 Claude Code(Anthropic의 CLI 도구)를 기반으로, Obsidian을 영구적 지식 레이어로 활용합니다.
왜 Obsidian이냐고요? 모든 객체(Entity : 스타트업, VC 펀드, 시장 분석, 전략적 인사이트)가 구조화된 메타데이터와 양방향 링크를 가진 마크다운 파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연결들이 복리처럼 쌓입니다. 지식 그래프는 개별 문서에서는 보이지 않던 패턴을 드러냅니다. 어떤 VC들이 특정 기술 주변에 클러스터링하는지, 어떤 시장 트렌드가 여러 포트폴리오 기업과 연결되는지, 어디에 화이트스페이스가 존재하는지. 단일 거대 AI 어시스턴트 대신, 시스템은 목적별로 특화된 에이전트 팀으로 구성됩니다:
핵심 설계 원칙은 이렇습니다: 에이전트들은 맥락을 공유하되 각자의 도메인을 소유합니다. 모든 에이전트는 하나의 공통 '전략 우선순위 파일'을 읽습니다. 모두 인사이트 라이브러리에서 관련 테마를 확인합니다. 모두 공유 체인지로그에 작업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각 에이전트는 자신만의 워크플로우, 템플릿, '완료'의 정의를 가집니다.
이것은 고성과 인간 팀이 작동하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 공유된 인식, 전문화된 실행.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인텔리전스는 문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사이트들은 리더십 추천 사항으로 흐르고, 시장 시그널과 트렌드를 자동으로 모니터링하는 데 활용됩니다. Chief of Staff 에이전트가 이것들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오래된 항목을 감지해 매 세션 시작 시 주의가 필요한 것들을 표면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는 각자에게 맞는 포맷으로 인텔리전스를 소비합니다:
임원들을 위한 브랜드 PDF
사업부 리더들을 위한 인터랙티브 HTML 사이트
미팅 참석자들을 위한 주석 가능한 Word 문서
이사회 발표를 위한 세련된 슬라이드
같은 인텔리전스, 다른 전달 방식. 그리고 인프라는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데이터베이스 없음. 클라우드 서비스 없음. 대부분의 기업이 이미 보유한 것 이상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없음. 시스템은 로컬에서 실행되며, 이는 완전한 데이터 주권도 보장합니다. 민감한 딜플로우 인텔리전스가 기업 환경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죠.
Bolwell은 HP Tech Ventures에서 이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면서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에이전트를 만들기 전에 시스템 내 모든 엔티티를 어떻게 구조화할지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일관된 구조의 메타데이터를 가진 템플릿이 있어야만, 그 하위 에이전트들 — 딜플로우 스코어링, 시장 분석, 미팅 준비 — 이 데이터를 신뢰성 있게 파싱하고 참조할 수 있습니다. 기반이 구조화되지 않으면, 위에 아무리 정교한 AI를 올려도 소용없습니다.
인텔리전스를 시스템 밖으로 꺼내 의사결정자의 손에 닿게 하는 것 — 이것이 진짜 도전입니다. HP 팀은 Microsoft Teams 인테이크 시스템을 구축해서, 동료들이 폼을 제출하는 것만으로 분석을 요청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술적 지식 없이도요. "사용자가 결과물을 쉽게 소비하지 못하면, 시스템의 인텔리전스는 낭비된다"는 말은 깊이 새겨들을 만합니다.
시스템은 성장할수록 질적으로 더 유용해집니다. 교차 참조가 패턴을 드러내고, 시장 분석이 기존 프로파일을 참조하며, 미팅 준비가 과거 분석에서 끌어옵니다. 지식 그래프는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는 누구의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프 자체가 제품이 됩니다.
전략적 관련성을 평가하는 모든 에이전트는 하나의 공유된 우선순위 파일을 읽습니다. 평가를 수정하면 모든 에이전트에 피드백이 전파됩니다. 이것 없이는 각 에이전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적인 편향과 불일치를 키우고, 시스템 전체의 신뢰성이 무너집니다.
초기에는 인사이트를 주간 다이제스트의 부산물로 취급했습니다 — 읽히고 잊혀지는 보고서의 한 섹션. 인사이트를 자체 라이프사이클과 액션 추적 기능을 가진 독립적인 문서로 만든 것이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분석 에이전트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이트 라이브러리를 확인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대신 기존에 합성된 인텔리전스를 기반으로 쌓아갑니다.
Bolwell은 이렇게 말합니다. "AI 에이전트는 팀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증폭시킨다." 판단력, 관계 구축, 전략적 직관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리서치, 프로파일링, 모니터링, 포맷팅, 액션 트래킹이라는 작업들 — CVC 전문가의 하루 대부분을 잡아먹는 그것들 — 은 자동화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더 광범위한 경제적 흐름을 반영합니다. AI가 실행을 대신할수록, 인간의 가치는 상류로 이동합니다 — 방향 설정, 판단, 창의성, 의사결정으로. CVC 팀에게는 이것이 스타트업 리서치에 쓰는 시간을 줄이고, 어떤 스타트업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창업자와 관계를 쌓고, 투자한 기술의 내부 채택을 이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이것이 몇 년 안에 CVC 표준 관행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팀들 — 불완전하더라도 — 은 기다리는 팀들에 비해 복리적 우위를 갖게 됩니다. 기술을 복제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스템 아래 쌓인 구조화된 지식 베이스는 하룻밤에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프로파일된 모든 스타트업, 포착된 모든 인사이트, 매핑된 모든 연결이 하룻밤에 쌓아 올릴 수 없는 기반을 만들어갑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몇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첫째, 한국 CVC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요?
한국에도 삼성벤처투자, 현대기술투자, LG테크놀로지벤처스, 롯데액셀러레이터, SK텔레콤 등 수십 개의 CVC가 활발히 운영됩니다. 최근 무협(KITA) 조사에서도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전략적 성과 창출이 평균 2~3년 걸린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CVC 팀이 정보 처리와 포맷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지, 그리고 그 시간에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Bolwell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겁니다.
둘째, 이 접근법이 우리에게도 가능한가요?
기술적으로는 Yes입니다. Bolwell이 강조하듯, 이 시스템은 데이터베이스도 클라우드 서비스도 필요 없습니다. Claude Code와 Obsidian, 그리고 잘 설계된 템플릿과 워크플로우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조직 문화적으로는 — 특히 대기업 CVC에서 — 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AI가 만든 브리핑을 임원이 믿어줄 것인가? 팀이 자신의 작업 방식을 기꺼이 바꿀 것인가? 이것이 기술보다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셋째, NextRise와 같은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에 적용한다면?
저는 NextRise와 여러 오픈이노베이션 챌린지들을 운영하며, 매년 수백 개의 스타트업을 평가하고 수십 개의 Fortune 500 기업과 연결하는 작업을 합니다. Bolwell의 시스템이 말하는 것 — 스타트업 프로파일의 표준화, 전략적 매칭의 자동화, 인사이트의 지식 그래프화 — 은 우리가 수동으로 하고 있는 작업 그대로입니다. 차이는 그가 이것을 AI 에이전트로 구조화했다는 것이죠.
넷째,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의 데이터 주권 이슈는?
Bolwell이 로컬 실행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민감한 딜플로우 정보가 기업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많은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클라우드 기반 AI 툴을 사용하면서, 민감한 기술 정보와 투자 파이프라인이 외부로 유출될 위험에 노출됩니다. 온프레미스 기반 AI 에이전트 구축은 비용이 들더라도 검토할 가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술이 아닙니다. 당신의 팀이 오늘 어떻게 일하는지를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기꺼이 바꾸는 것입니다."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것은 대규모 엔지니어링 팀이나 엔터프라이즈 AI 플랫폼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구조화된 템플릿, 연결된 지식 베이스, 함께 작동하는 특화 에이전트, 그리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기술은 이미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우리의 결단입니다.
한국의 CVC 프로그램들, 그리고 오픈이노베이션 조직들이 이 글을 읽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복리처럼 쌓이는 지식 자산을 지금 당장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남은 숙제입니다.

감사합니다, Dr. Jin이었습니다. ☕
[참고자료]
Andrew Bolwell, "The CVC Problem Nobody Talks About — and How AI Agents Solve It", Megatrends by HP, Medium, 2025.03
McKinsey & Company, Corporate Venture Capital Research Series
Bain & Company, CVC Industry Analysis
Stanford University / INSEAD, Corporate Venture Capital Studies
진형석,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유망 선진 기술 확보 전략", KITA 이슈페이퍼, 202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