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 심장박동의 춤을 느낄 수 있다면.

by 홍문화

춤을 춘다.

모든 것엔 예열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두르지 않고 발을 움직이고 고개를 까딱이고, 작은 동작을 반복하며 감각을 느끼다 보면 춤이 시작된다. 움직임은 다음 움직임을 만든다. 마치 한 문장을 적고 나면, 다음 문장이 이어지듯이.


어느 순간엔 무엇을 할지 모르겠는 때도 있다. 그런 때엔 잘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의 한 발을 내디디면 다음 동작이 이어진다.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다.

그저 흐르다 보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흐름에 기대었을 때, 큰 파도에 내맡겨진 것 같은 순간도 온다. 빨려드는 거대한 폭풍 속 나뭇잎 같기도 하고, 반짝이는 빛의 소용돌이 속 하나의 먼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더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out of control. 통제권이 사라지고 거대한 흐름에서 무아의 춤을 춘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숨을 고르고 속도를 되찾을 때는 안정감을 느낀다. 무엇이 더 좋다는 건 아니다. 안정감도 카타르시스도 각기 다른 맛으로 삶에는 필요하다.


도저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소용돌이가 서서히 멈추고, 호흡에 눈을 맞출 때 몸은 멈춰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음을 느낀다. 표면의 시선에서는 멈춰버린 움직임이지만, 살아있는 것은 숨을 쉰다.


오늘은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심장박동을 바라보았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흐르고, 몇 번이나 음악이 바뀌었지만 몸과 마음이 고요를 원할 때는, 순응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20분여를 가만히 멈춰 심장의 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충분함 속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 '빼쭉' 가슴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이미지가 마음에 떠올랐다. 충분한 겨울을 지나야, 호기심과 생기 어린 봄이 온다.


‘고요 속에서도 심장박동의 춤을 느낄 수 있다면,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도 충분히 평안할 수 있겠구나.’




너무나 바쁜 2024년과 2025년의 1,2월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일주일에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움직임은 다음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삶의 파도에 내맡겨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는 일의 특성인지 지향하는 삶 때문인지, 생각 속에 빠져있기보다는 감각하고 머무르는 시간, 성찰하는 빈 공간을 갖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을 기록하거나 나눌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에 2일은 쉼을 가지려 한다. 하루는 충분히 쉬는 날, 하루는 고요 속에 사유하고 내 안의 것들을 꺼내주는 날. 이제는 글을 좀 쓰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빼꼼하고 내 안의 무언가 고개 내미는 순간을 만나주고 싶다. 춤추고 난 뒤 애씀 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는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