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드 유나이티드] - 축구없는 축구영화

by 태빅스
I am Special One.

2000년대 축구계의 센세이션, 자칭 ‘스페셜 원’이라 불리며 유럽 3대 리그를 평정했던 사나이.
전술의 혁신가, 독설의 아이콘, 그리고 언제나 자기 확신으로 똘똘 뭉친 승부사.
조세 무리뉴.

그가 이후 팀 장악력 문제로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였어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함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무리뉴보다도 한참 전. 잉글랜드에서 ‘스페셜 원’의 원형처럼 존재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브라이언 클러프.




# 잉글랜드가 사랑한 가장 위대한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

잉글랜드가 사랑한 위대한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

영화 <댐드 유나이티드>는 클러프의 커리어에서 단 44일 간의 시간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은 마치 “지옥(Damned)” 같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클러프는 단순한 실패의 아이콘이 아니다.
2부리그의 더비 카운티를 1부리그 챔피언으로,
이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를 이끌고 유러피언 컵(현 챔피언스 리그)을 무려 2회 연속 우승시키는 기적을 만든 장본인이다.


돈 레비가 이뤄놓은 것을 깨기 전까지는 전 먹지도, 자지도 않을테니까요.
돈 레비란 이름을 다신 듣지 않게 계속해서 이길겁니다.
전 위대한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 이니까요.



#애증의 시작

더비카운티의 FA컵 3라운드 상대는 리즈 유나이티드로 결정되었다.


"타도 돈 레비"로 시작된 집착

클러프의 집념은 한 인물에서 시작된다.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를 이끌며 영국 축구계를 지배하던 ‘돈 레비’.
그는 클러프가 존경하던 인물이었다.

FA컵에서 약팀 더비 카운티가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하게 된 날,
클러프는 그를 맞이할 준비를 완벽히 했다.
직접 페인트칠까지 하며 기다렸지만,
돈 레비는 악수조차 거절하고 지나쳤다.

그날의 상처는 곧 증오로 바뀌었다.
“타도 돈 레비, 타도 리즈”
이것이 클러프의 인생 모토가 된다.


# 조력자 '피터 테일러'


클러프의 오른팔, 피터 테일러


클러프의 성공에는 언제나 한 인물이 함께 있었다.
피터 테일러.
감정적이고 직선적인 클러프를 잡아주는 차분한 조력자.
전술보다는 동기부여에 강했던 클러프의 빈 부분을 테일러가 메웠다.

<댐드 유나이티드>에서 보여지는 클러프는 ‘모티베이터’에 가깝다.
전략과 전술, 영입의 디테일은 대부분 테일러의 손끝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환상의 콤비였다.


#축구없는 축구영화
복수의 시간


기어코 이긴다


축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축구영화

흥미롭게도 영화는 실제 축구 장면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 감독의 심리와 인간관계, 감정의 변화를 조명한다.
관객은 승부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들여다보게 된다.
클러프의 증오, 야망, 오만, 상처.
그 모든 것이 이 영화를 축구 이상의 이야기로 만든다.


#위기 그리고 추락

클러프의 리즈 유나이티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1부리그 우승을 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유벤투스와의 유러피언 컵 준결승을 앞두고 리그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와 맞붙게 되었는데, 주전선수들을 모두 기용 할 정도 였으니.

당연히 감독 입장에서야 라이벌을 꼭 이기고 규모가 더 큰 대회에서도 이기고 싶은게 당연할테지만,

클러프는 아마도 보통의 감독보다도 어떻게든 라이벌을 꺾어 버리고 말겠다는 의지가 더 강력했을 것이다.

이런 클러프의 성향과 다음 주에 있을 유벤투스와의 경기를 걱정한 구단주는 후보 선수 들도 기용하라고 조언하지만 클러프는 오히려 구단주에게 막말을 하며 본인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하지만 구단주가 걱정한대로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다수의 주전선수들이 부상당하며 유벤투스와의 준결승 역시 패배하고 만다.

클러프는 이 경기 직후 언론에 공개적으로 이사회를 비판하다 갈등을 빚게되고 더비 카운티에서 경질 당한다.

어떻게든 더비 카운티 감독으로 복직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을 써보지만 클러프는 자신이 데려온 선수가

더비 카운티의 감독이 되는 정말 눈 뜨고는 못 볼 상황까지 보게 된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2부리그의 하위권 팀이었던 더비 카운티를 1부리그 챔피언으로 만들어 놨더니 3부리그의 하위권 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에서 감독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한다. 물론 '피터 테일러'와 같이.

돈이 있던 사람이 없어지면 못 살듯이 클러프는 이런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피터의 설득과 마땅히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이라 수락하게 된다.

그러나 또 반전이 일어났다.

자신의 숙적 '돈 레비'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며 리즈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이 공석이 되었는데,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클러프에게 감독직을 제안한 것이다. 물론 '피터 테일러' 와 같이.

클러프는 이미 브라이튼의 감독직을 수락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숙적의 팀을 이끌기 위해 리즈 유나이티드 의 감독직을 수락하게 되는데 이 때 피터와의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 끝없는 추락. 그리고 44일

그리고 44일의 추락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클러프는 돈 레비의 후임으로 리즈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된다.
숙적의 팀. 증명하고 싶었던 자리.
하지만 팀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그를 무시했고, 의도적으로 경기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결과는 리그 최하위. 단 44일 만에 경질.

영화는 이 절망의 시간을 조명한다.
그리고 말한다.
진정한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소통하지 못한 팀워크’에서 온다는 것을.




브라이언 클러프요. 브라이언 하워드 클러프.


피터 테일러 없이 홀로 팀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과 어색함. 10년 이상 리즈에 장기집권했던 돈 레비 이후 모든 것을 잘 이끌어 가야 한다는 부담감.

44일만에 감독직에서 내려와야 했던 클러프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제목처럼 DAMNED(거지같은, 지옥같은)

같은 시간이었다.


무리뉴와 클러프, 그리고 우리

조세 무리뉴는 스스로 브라이언 클러프와 닮았다고 말했다.
(참조: SkySports 기사)

비슷하다.
무리뉴에게 루이 파리아가 있었다면, 클러프에게는 피터 테일러가 있었다.
무리뉴도 선수단과의 불화로, 클럽과의 마찰로, 위대한 감독에서 경질되는 길을 걸었다.
화려한 언변, 확고한 철학, 팀보다 자신이 먼저였던 순간의 실수.
두 사람은 다른 시대의 거울처럼 닮아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댐드 유나이티드>는 결국 실패를 그리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클러프는 리즈에서의 실패 이후,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팅엄 포레스트를 이끌고
유럽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축구는 팀 스포츠다.
혼자 잘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신뢰,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놓친 순간,
가장 위대한 감독도 추락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축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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