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의 주체로서 과자를 먹는다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부터 할 수 있는 선에서 먹는 것을 최대한 조절하고 있다. 쉽게 살이 찌는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워만 있어도 기력이 쪽쪽 빨리는 무더위를 몇 주 겪고 나니 입맛도 기력도 쏙 사라졌다. 유동식과 커피에만 기대어 살아갈 순 없어서 이번 여름 한정 <먹고 싶은 건 다 먹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말만 거창하지 그냥 식단 제한을 푼 것이다. 한동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이스크림에 홀릭해 있다 떡볶이와 과자로 옮겨왔다. 출근 전 지하철 역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서로 다른 맛의 꼬마김밥 세 줄과 따끈한 떡볶이를 먹는 기쁨 하며 알차게 일했다고 느껴지는 날 퇴근길 마트에서 과자 하나를 골라 먹으며 집까지 걸어오는 즐거움까지. 먹고 싶은 걸 제때 먹어주는 일이 선순환의 물꼬를 터준 덕분에 보다 충만하고 기력 넘치게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 최애 과자 중 하나인 왕고래밥을 먹으며 집으로 오던 길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과자를 먹고 있네. '과자'가 나를 먹는 게 아니라.'
번뜩 나의 변화를 실감했다.
과거의 나는 스트레스가 심한 때면 먹어서라도 내 정신적 허기를 채우고 싶었다. 삶의 통제권이 나에게 없다고 느껴지던 시절, 먹는 것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먹겠다는 주도감이 필요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나는 많이 먹었다. 폭식은 나의 일상이었는데,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했고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처럼 보이는 먹는 일로 도피했다. 그땐 내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이 나를 먹었다. 원했다고 생각했던 걸 먹고 나서도 늘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내 욕망에 끌려다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도 이토록 기쁨을 느낄 수 있다니. 내 욕망의 주체로서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니.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은 익숙했지만 내 선택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기력과 마음의 증거들은 스스로에게 건강한 신뢰를 부여하고 있었다.
왕고래밥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생각했다. 와 나 이제 과자랑 아이스크림 마음대로 먹어도 되겠다. 떡볶이도 튀김옷 있는 치킨도 피자도 삼겹살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나오는 볶음밥도 카페의 디저트들도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되겠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건강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래서 더는 스스로를 해칠 선택들을 하지 않을 테니까. 나에게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니까. 가끔 예전처럼 돌아가는 날이 있어도 다시 옳은 길을 향할 것이다. 가끔 스스로에게 깜짝 놀랄만한 날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게 바로 오늘입니다. 이런 날은 셀프 칭찬을 열심히 해줘야 한다. 칭찬은 나를 춤추게 만들기 때문이고 그 힘으로 더 열렬히 칭찬받기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주체감을 되찾은 오늘의 기분입니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