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로 자기 내면을 가장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했던 앙리 마티스
그는 자연이나 사물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지금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가, 지금 이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내 줄 색은 어떤 것인가에 집중했다. 외부 세계의 묘사보다 자기 내부세계의 표출에 힘쓰고 그 자체만으로도 미술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려 했다.
법률을 공부하던 마티스는 1891년 아카데미 쥴리앙을 거쳐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지도를 받게 된다.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자유로운 교육을 했던 모로의 곁에서 마티스는 샤딘Jean-Baptiste-Siméon Chardin이나 푸신Nicolas Poussin 등의 고전주의 화가들을 공부해 나간다. 이 시기 마티스 회화의 컬러는 고전주의 화가들에게서 자주 보이던 회색빛이 더해진 채도가 낮고 침침한 느낌이다. 모로는 마티스의 그림과 취향에 감탄하며 마티스가 앞으로 그림을 단순화시켜나갈 것임을 예견했다. 그와 동시에 단순히 선생인 자신의 말은 잊고 마티스 자신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해나가길 조언했다.
1896년 카밀 피사로Camille Pissarro를 만나 그림을 익히며 풍경과 빛을 일체감있게 표현하던 낭만주의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그림을 알게 된다. 또 존 러셀 John Russell을 만나 고흐의 화풍을 접하고 그 동안 사용하던 색상들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여기에 쇠브뢸 Michel Chevreul의 컬러휠을 활용해 혼합색, 보색 관계와 같은 색상원리를 이해하고 사용했다.
통찰력을 지닌 좋은 멘토들을 만나 이론적 지식을 탄탄히 쌓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며 마티스만의 독자적인 그림 세계가 확고해진다. 마티스는 기존 인상주의 회화들이 사진처럼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서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과 시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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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기 전 그렸던 습작들
샤딘이나 푸신 등의 고전주의 화가들의 화풍과 색채를 모작한 흔적이 보인다.
색채의 사실적 표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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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모로의 자율적이고 개인맞춤형의 지도를 받은 시기,
평소 취향이던 고전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분석하고 자신의 그림에 적용해 나간다.
마티스의 개성보다는 고전주의 특유의 회갈색 톤을 기본으로 한 저채도, 중명도의 표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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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하얀색을 주로 이용한 빛, 밝음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나타났다.
이 때 마티스는 벨뢰섬에 거주하던 존 러셀을 만나 색상에 대한 관념을 180도 바꾸게 된다.
다른 어떤 시기보다 하얀색을 가장 많이 활용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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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후 러셀, 고흐 등의 영향을 받아 색을 점으로 강하게 붓터치하는 점묘법과 신인상파 화풍이 나타난다. 마티스의 색감이 다채로워지고 주황과 녹색과 같은 보색대비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단순화된 형태, 장식적인 색상의 적용, 미완성인 듯한 추상적 분위기 실제를 비껴난 색채의 조화가 나타난다.
마티스는 색을 형태를 나타내는 부차적인 것이 아닌 조형요소의 중요한 표현도구이자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는 자연이나 사물이 지닌 고유색 대신 작가 스스로가 부여한 색을 적용하고 평면 위의 형식주의 표현임을 중요시했다. 점묘법-선의 적극적 활용-단순화된 면의 부각으로 이어지던 그의 색채 표현은 호기심과 수용적 태도로 새로운 기법을 익힌 후 답습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회화방식이나 형식에 얽매이는 순간 회의감을 느끼고 더 순수에 가까운 표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발전해 나간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화풍이나 기법이 모두 다른 것 같지만 5~10년 정도로 구분해보면 빠르게 외부정보를 습득하고 자기화해 나가는 일련의 성장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티스’의 그림, ‘00파 화풍’ ‘그림이 지닌 의미’가 아니라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의 직관적 영감을 색채요소들로 표현해나가는 실험과정 그 자체이다. 곧 색채의 자율적 표현=’나’ 마티스가 추구하는 표현인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타자에게 전달하는 개념은 현대미술과 같다.
마티스는 순수한 본능적 표현을 위해 여행을 즐겼다. 코스시카와 툴루즈 등의 지중해, 알제리, 모로코 등 이슬람 지역을 여행하며 작가에게 필요한 전이를 일으키기 위해 자연과 접촉해 영감을 얻어 나간다(Lee, 2015). 1911년 이후 두 차례 모로코를 방문한 뒤 그의 작품에는 다채로운 오리엔탈 색채가 진하게 녹아 든다. 이 시기를 거치며 마티스는 일본판화Ukioye, 비잔틴 모자이크, 동방직물 수집 등 이국의 정취에 매료되었으며, 다양한 지역의 여행과 각종 기념품 수집, 박물관 관람 등은 마티스의 색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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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벗어나 색을 활용한 선과 면이 강하게 표현된다.
이전보다 레드, 오렌지와 같은 강조 색상의 채도가 높아지고 그림자 면에도 어두운 무채색과 선명한 청보라를 조합해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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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가 추구하는 내면의 원시적 표출이 그대로 나타나는 색상을 활용하는 시기이다.
<열린 창문 Open Window> 청록색과 자주색 영역의 분리, 주황색 문이 열린 가운데 보이는 발코니의 식물들.
<앙드레 드랭 자화상><마티스 자화상>은 야수파 주요 멤버이자 친구사이인 마티스와 앙드레 드랭이 서로 그려준 작품이다. 둘은 구스타브 모로의 제자이자 같은 시기 출생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기존 회화양식을 타파해 나가고자 하는 회화를 대하는 태도가 닮아 급진적 표현을 선보였다. 1905-1907년까지 집중적 활동을 보였던 야수파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아내 아멜리에를 모델로 한 <모자를 쓴 여인 Woman with a Hat>은 격식을 타파한 야생적Fauves이고 본능적인 색상의 사용으로 Fauvism 논쟁의 중심이 된 그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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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영감을 얻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마티스는 아프리카 알제리 여행을 다녀온 뒤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색채에 매료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받은 자극과 영감은 그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들을 여과없이 나타내도록 돕는 역할을 했고, 이것은 거침없고 강렬한 색채사용으로 나타난다.
<푸른 테이블보와 정물 Still Life with Blue Tablecloth>은 평소 좋아하던 아라베스크 문양의 직물패턴을 가진 테이블보 위에 놓인 화병과 과일 정물을 그린 것으로 중채도의 파랑을 사용해 역동성있게 표현했다.
<삶의 기쁨 The Joy of Life >은 원시적이고 화려하면서도 몽환적인 삶의 기쁨이 그대로 나타나는 빨강, 주황, 노랑의 난색과 녹색, 블루의 조화로 강렬하고 즐거운 파라다이스를 표현했다. 1906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해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손을 맞잡고 둥글게 춤을 추는 사람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풀밭위에서 피리부는 여인 등 즐거운 삶의 환희가 전해진다.
<젊은 선원 The Young Sailor> 시리즈는 젊은 선원의 초상화 스케치를 시작으로 회화 표현법을 간략하고 단순화 시키는 변화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핑크색을 배경으로 검정을 섞은 남색상의와 녹색하의를 입은 선원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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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음악, 놀이, 즐거움.
마티스의 그림들에서 꾸준하게 등장하는 소재들로 인생의 즐거움과 평온함을 추구했던 마티스의 인생관이 일관되게 표현된다. 원색에 가까운 파랑 배경, 녹색이나 청록색의 들판. 안정감과 편안함이다.
마티스는 그저 즐거운 사람들, 그저 그것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 작가의 의도를 파헤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원을 돌며 손을 맞잡고 춤추는 사람들의 역동적 몸짓을 보면 얼쑤소리가 절로 난다.
나는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색을 선택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관찰, 감각, 체험을 통해 선택한다. 들라크루아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시냑같은 화가의 보색효과에 흠뻑 빠져 들었다. 보색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색을 써야 할지를 그에 게 자연스럽게 알려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감각을 잘 표현하는 색을 쓸 뿐이다. 색조의 균형을 이루려는 충동은 인물의 모습을 바꾸게 하거나 구성자체를 바꾸도록 몰아간다.
<화가의 노트> 1908년, XavierGirard,이희재 역,《마티스》중
내가 실내를 그린다고 가정하자. 내 눈앞에는 찬장이 있다.
찬장은 나에게 선명한 빨강의 감각을 주며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빨강을 칠한다. 이 빨강과 캔버스의 백색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한다.
이제 그 빨강 옆에 녹색을 칠하고 바닥을 노랑으로 칠한다고 가정하자. 역시 녹색과 노랑, 캔버스의 백색 사이에 나를 만족시키는 어떤 관계가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이 다양한 색조는 서로를 약화시킨다. 내가 바른 이런저런 색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색과 색의 관계는 개별 색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방식이라야 한다. 처음의 관계 대신 이제 새로운 색의 조합 이 나타나 나의 생각을 총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여러 번 수정을 거쳐 그림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일 때까지 나는 그림을 계속 고쳐야 한다.
<화가의 노트> 1908년, XavierGirard,이희재 역,《마티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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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에 대한 그의 신념이 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 <빨강의 조화 Harmony in Red>.
원래는 파란색을 배경으로 요청되었으나 마티스는 자신의 감정과 직관에 따라 빨강 바탕으로 변경하고
평소 좋아하던 꽃무늬 아라베스크 문양을 파랑색으로 넣어 극적인 대비효과를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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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커튼 The Yellow Curtain>은 커튼이라는 대상물에 마티스가 느끼는 감각들을 색채로 표현한다.
선택은 관찰과 경험, 감성에서 출발하지만 충동적이지 않고 색채이론에 기반해 조화, 대비 등을 고려해 채색해나간다. 펄럭이는 선명한 노란 커튼 사이로 보이는 연한 하늘색의 배경과 연한 청록색 테두리는 그가 색을 혼합하고 배치하는데 고심한 흔적을 알 수 있다.
2차 평면회화의 장식성을 강조하던 마티스는 1930년대 이후부터 자신이 직접 채색한 종이를 잘라 붙이는 작업 Cut-Out을 시도한다. 종이를 잘라 붙이는 과정으로 작품은 더 자율적이고 단순화된다. 자연과 사물의 모방을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과 색에 집중하면서 그의 작품의 형태는 점점 단순화되어 추상적으로 변화한다. 의미 없는 자연의 재현보다 색상간의 관계(Cho, 2006)가, 조형요소보다 색채 자체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ALL I THOUGHT OF WAS MAKING MY COLORS SING’
색 COLOR 자체만으로도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노래하듯 만들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마티스에게 색채는 가장 우선시되는 독립적이고 독보적인 조형 요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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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즈재단의 요청으로 진행된 삼부작 벽화 시리즈 <춤 Dance>.
아치형으로 그려진 바탕위에서 사람들이 얼키고 설키며 춤을 추고 뛰노는 모습을 하얀색으로 표현했다.
캔버스 판넬에 유화로 그린 그림임에도 마치 잘라붙이기 한 듯한 느낌이 난다.
2차평면 장식적 요소를 강조한 이 작품은 이후 종이자르기로 표현하는 컷아웃 Cut-out방식의 영감을 준다.
핑크, 파랑, 검정을 조합한 바탕의 색상 구성과 흰색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당장 디자인 포스터로 활용해도 충분할만큼 감각적이다.
"천장과 아치형 천장 모두가 방사선을 통해 생기고 주요 효과는 바닥으로 계속 내려 간다. 나는 심히 피곤하지만 아주 기쁘다. 캔버스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나에게서 분리되어 건물의 일부가 되었다. "
- 마티스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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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이후 단순화된 선과 색채의 사용은 그림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그의 비서였던 리디아의 초상화로 대칭도 맞지 않고 붓몸통에 가깝게 짓이겨 칠한듯한 붓터치다.
그래서 편안하고 더 매력이 있다. 하양을 섞은 중채도, 중명도의 파랑, 청록색과 검정을 섞은 노랑, 핑크빛 피부색의 조화가 부드럽고 신선하다. 많은 색을 쓰지도 많은 장식을 더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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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인한 복부수술로 붓을 쥘 수 없었던 마티스는 종이에 도안을 그리고 색을 입혀 잘라붙이는 시도를 한다.
병상에서도 그는 쉬지 않고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종이를 잘라 붙이는 작업은 색을 고심해 큰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보다 훨씬 수월하다. 종이에 과슈로 채색한 후 원하는 형태로 잘라 2명의 댄서를 구성했다. 종이 조각을 여러 개 잘라 손이 닿는대로 떠오른 영감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다. 딱 맞추어 붙이지 않고 원하는 구성이 나올때까지 조각을 붙여 나가 완성한다. 형태는 더욱 단순화될 수 밖에 없고 순색의 사용으로 심볼포스터같이 보인다.
단순, 명확,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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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이르러 마티스의 그림은 선 하나까지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한 선으로 깔끔하게 그려나간 여성의 크로키 데생은 단순하게 표현되었지만 표정, 포즈, 생김새, 머리장식까지 완벽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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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을 그린 <루마니아 블라우스 The Romanian Blouse>.
크게 부풀려 그려진 흰색 루마니아 블라우스는 빨간 배경과 파랑 치마와 매력적으로 조화된다.
단순화했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은 강렬한 색상매치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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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hoir 스텐실 기술을 이용해 인쇄된 책 재즈의 8번째 판.
신화 속 인물인 이카루스는 푸른 밤하늘과 반짝이는 노란별 배경에 단순화 된 형태이다.
색혼합없이 순색의 파랑, 검정, 노랑, 빨강 4가지만으로 표현해
욕망의 주인공 이카루스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추락한다.
심장으로 보이는 빨간 원은 작지만 중앙에 위치해 마지막까지 시선을 끈다.
2차세계대전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참전중인 공군비행사의 추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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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테이블 정물과 레드 인테리어.
제목 그대로 (검은 지그재그 무늬를 가진)빨간 벽과 사과와 꽃병이 놓은 파란 테이블이 있다.
모든 표현이 단순화되었고 창문과 외부의 경계가 있지만 무의미하게 조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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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종이를 오려붙인 누드는 단순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마치 한 번의 가위질로 오려낸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거칠지만 조합이 유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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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기 1년전 작업했던 달팽이 종이올려붙이기 작품.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색상을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고 Colors가 아닌 Color로 표현했다.
그가 사용한 색채로 시대상황과 심리상태도 짐작해볼 수 있다.
자신에게 적합한 화풍이나 색상조합의 연구와 모방, 새로운 문물에 대한 수용, 경제위기, 병환 등의 개인상황이나 전쟁 등의 시대적 상황이 그의 자유로운 색상표현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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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n
1902-1903년에 걸쳐 화가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심히 겪었던 마티스는
그의 회화작품에서 주명하게 표현하던 정물과 풍경그림의 색상을
뭉개버린 탁한 갈색, 검정을 혼합해 사용했다.
빈곤으로 인해 답답하고 방어적인 정서적 불안이 나타나는데,
실제 고동색과 갈색의 대비는 빈곤, 물질욕구의 차단으로 인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마 밑 작업실은 창밖의 작은 배경을 제외하고 온통 검정 섞인 갈색과 고동색으로 표현되었다.
형태나 색채 모두 야수적인 기개는 사라지고 없다.
이젤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캔버스와 재료와 습작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텅 빈 작업실은
마티스의 경제적 곤란과 심리적 우울감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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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후 한창 야수파로 불리우며 세간의 질타와 호응 속에 전시를 이어가던 마티스는
소수 평론가들의 우호적인 반응에 반해 기존의 회화 양식을 뒤집는 혁신적인 작품들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격렬하게 비판받았다.
이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가정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내면 심리상태가 검은색이 혼합된 누드화로 나타난다.
이러한 어두운 색상은 기존 마티스의 야수파 전시 색채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대중의 반응에 대한 공포와 극심한 스트레스, 우울감을 짐작할 수 있다.
1914-1918년에 걸친 1차세계대전은 유럽에서 활동한 마티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평소 화려하거나 강렬하게 표현하던 여성들의 초상화는 전쟁시기에는
모두 검정색을 배경으로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암흑이다.
암담하고 처참한 시대상과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마티스의 내면을 보여준다.
모로코를 회상하며 그린 그림들은 어둡고 빛바랜 색채를 지녀
그 어디에서도 모로코를 찾을 수 없다. 그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모로코의 파랑은 힘을 잃는다.
전쟁시기 중 그린 많은 작품들이 검은색을 배경으로 한다. 공포와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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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색과 파스텔톤을 조합 사용해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가에서의 평온함과 즐거움을 표한다.
노랑과 파랑, 녹색과 주황 등 보색대비와 톤온톤 파스텔 그라데이션 점묘법으로 표현해 색채간의 조화를 극대화한다.
마티스는 평생을 갈등이나 정치 등에 관심없이 균형과 평온을 일관되게 추구한다.
행복한 순간의 심리와 야수파의 기존 체계를 탈피하고자 한 표현이 돋보인다.
금붕어가 있는 어항과 뒤편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아라비안 커피하우스.
지극히 평온함의 상태를 보여준다.
마티스가 항상 추구하던 이 평화로운 공간은
따뜻한 색상의 황토색과 핑크, 파스텔톤의 청록색과 연회색으로 조화시킨다.
형태는 최대한 단순화시키고 동양적인 곡선의 형태는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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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마티스는 알제리 여행 후 아프리카 예술의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강조된
빨간색 카페트와 염색된 천직물 무늬를 단순화시켜 강렬하게 그려냈다.
마티스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을 바탕으로 해 색채를 선택하고 표현한다.
알제리 여행 이후로 원색의 강렬한 빨강의 사용이 증가했다.
1920년대 중반 10여년 전에 머물렀던 모로코에서의 경험을 회고하며 그린 작품들에서도
빨강을 많이 사용한다. 모로코 거주 당시 파란색이 지배적이던 것과 사뭇 다르다.
마티스 회상 속 모로코는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체험의 환기보다 에로티시즘에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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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의 1910년대 작품중에는 파란색을 주요 컬러로 사용한 작품이 많다.
이 당시 마티스는 7개월 동안 모로코에 거주하고 있었고 동양적 색채와 패턴에 심취 되어 있었다.
검정색을 혼합해 채도와 명도를 낮춘 파랑을 주로 사용했다.
1911년 그려진 파란 창문은 사물의 배치와 공간의 여백, 단순화된 표현, 완만한 곡선의 활용으로
그가 체험하고 받아들인 동양적 미술관을 녹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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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좋지 않았던 마티스는 70대 이후로 종이오려붙이는 방법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왕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세례자 요한, 살로메, 헤로데왕을 그렸다, 그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등
작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마티스의 회화작품 주요 주제로 등장하는 사람, 음악, 즐거움이 검은색 옷을 입은 기타를 든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져 죽기 전 음악과 색감으로 이별을 고하는 마티스의 감정이 전해진다.
이미지 출처 http://art-mati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