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강서구 마곡에서
내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해주면 더 좋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2023년 초는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고, 집값은 떨어졌다. 실예로 30만원대로 나오던 대출 이자가 90만원대로 오르기도 했고 주식은 외줄타기처럼 휘청거렸다. 그야말로 경제 위기가 크게 대두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도 중요한 시기였다. 마지막 유치원 시기였고 내가 선택해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교육 기관이 유치원이기도 했다.
(어제 슈카에서도 영유아 수는 줄고 있는 데 영어 유치원이 2배 증가했다는 통계 자료를 보여줬다.)
다양한 경험 중에 꼭 영어여야 했을까? 적어도 우리 아이에겐 그랬다. 일반 유치원을 5세, 6세 2년간 다니면서 뒷산과 놀이터를 섭렵한 아이였다. 유치원을 마치면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졸랐고 유치원에서도 자연 친화적인 수업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참관 수업에서 엄청 많은 낙엽을 깔아놓고 눈 싸움하듯 서로 던지고 공중으로 던져 아름답게 퍼지는 모습을 연출했고 점토로 부모를 만들어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모래놀이를 했다. 좋은 유치원이었지만 작년에 다른 아이가 던진 블럭에 머리를 맞아 두 바늘 꼬매야 했을 때는 조금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흙 대신 펜을 쥐여 볼까 싶은 순간이었다.
<흙과 친했던 5-6살>
서울 강서구 마곡에는 1군 영어 유치원이 있다. 3개 정도인데 그 중 한 군데를 골라 설명회를 갔었다. 영어 커리큘럼도 좋고 시설도 좋았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고 이 정도의 값어치를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설이 좋은 만큼 거품도 있을 것 같은 예감도 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방과 후 수업의 커리큘럼이었다. 방과 후 수업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구성에 흥미가 떨어져 보였다. 나도 별로 인것 같은데 우리 아이가 좋아할까?
<1군 영유의 방과후 시간>
(종이접기는 유튜브로 이미 많이 배우고 있다.)
그리고, 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의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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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유치원은 학원 방과후 비용에서 가장 많이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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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2군 영어 유치원에 상담을 신청했다. 이미 설명회는 끝난 다음이었고 1:1로 원장님이 상담을 해주셨다. 그 덕에 궁금한 점을 상세히 물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방과 후 과목도 재미있어보였다.
<2군 영유의 방과후 시간>
그래서, 3월 초부터 이 영어 유치원으로 옮기게 됐다.
1)
3월 시작부터 나에게 질문하는 횟수가 늘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진 것이다. 예를 들면 반 친구가 자기 앞에 새치기 했는 데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는 식이다. 나는 새치기하지 말라는 말이 Don't Cut in line 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그 친구 영어 이름도 알아내서 기억해두고 있었다.
2)
처음 3월은 많이 산만했는 데 지금은 너무나 잘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선생님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쁘다고 하셨다. 3월 초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뭐라하는 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4월 초가 되자 이제 선생님 말이 좀 들린다고 했다.
3)
집에서도 자주 영어로 논다. 흐릿한 발음으로 영어 동요를 부르는 것은 예사고 최근에는 자기가 영어로 말해볼테니 100의 자리 숫자를 아무거나 말해달라고 한다. 내가 745라고 말하면 Seven Hundred Forty Five라고 대답한다. 몇번 계속 해보니 거꾸로 영어를 한국말로 바꾸는 것도 잘했다.
4)
영어 원어민 선생님의 말이 그 날의 화두가 된다. 한번은 Five Minutes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대화 맥락을 보니 물을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시더라는 거다. 좀 기다리라는 뜻이라고 했더니 한참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간 했던 선생님의 그 말이 퍼즐 조각을 찾아 끼운 것처럼 착착 맞아 떨어진 모양이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은 One Second라고 알려줬다. 다음 날 유치원에 가기 전에 One Second가 맞는 지 다시 물었다.
사실 이런 해석 없이 바로 받아들이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계속 영어를 한국어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양을 보니 7살은 좀 늦었나? 싶은 데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매주 이런 유인물이 온다. 시간표가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찍어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 최소한의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스스로 뿌듯해한다. 영어 유치원은 아이보다는 부모들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하던데 아이도 나도 만족한다. 예산이 한끼당 3000원인 급식과 14000원인 급식의 질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숙제 챙길 것도 이벤트도 많지만 그만큼 재밌어하는 게 분명했다.
이걸 정리한 사람이 있을까?
초기 3월은 1회성 비용이 많아 금액이 크다. 추가로 우유나 식판금액도 있지만 월 3만원 미만이다. 2군 영어 유치원을 선택해서 나온 금액이고 1군과 비교를 해본다면 약 월 46만원 정도 더 저렴했다. 물론 선택에 따라서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방과 후 과정을 신청하지 않으면 금액은 크게 떨어진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고자 했던 내 바람은 어느 정도 올바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오늘도 운이 좋게 지인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물려 받게 되어 처음으로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화요일마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몇 번 배워본 덕이다. 물론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아빠 엄마에게는 바이올린 연주는 커녕 처음 보는 악기다. 가까스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주하는 데 얼추 음이 구분된다. 신기함과 놀라움을 더한 칭찬에 아이 스스로 뿌듯해 했고 어설프게 바이올린을 목 틈에 끼워보는 우리를 차분히 가르쳐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다음주 화요일 바이올린 수업은 좀 더 즐겁게 배우고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