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조사원 P가 발행한 16개의 기묘한 에피소드
에피소드 6
내 노트북 컴퓨터(앞으로는 노트북이라 하겠다.)에서는 나무가 자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한 때 유행했던 다마고치 같이 바탕화면에서 가상으로 키우는 나무가 아니란 말이다. 홀로그램도 아니다. 아직 우리의 기술로는 이렇게 완벽한 홀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것은 진짜 나무이다. 만질 수도 있다. 심지어 나뭇잎도 떨어진다. 솜씨는 없지만 대충 그림으로 나타내자면 이런 모습이다.
물론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에이, 말도 안 돼! 합성이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것이 나의 노트북이다. 지금 이 글도 저 노트북을 이용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노트북은 늦은 밤 아파트 입구 어린이 놀이터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 당연히 누가 잊어버리고 간 것인가 싶어서 관리실에 연락하고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며칠 째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노트북은 내 차지가 되었다. 사실은 나중에라도 주인이 나타나면 되돌려준다는 조건으로 관리소장 아저씨에게서 거의 억지로 빼앗아 온 것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저렇게 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키보드의 H 자판과 J 자판 사이에 무순처럼 1cm도 안 되는 작은 새싹에서 시작하여 약 1년 만에 저만큼 자란 것이다. 처음 싹이 나왔을 땐 어디선가 날아온 운 나쁜 풀씨가 자판 사이의 티끌 먼지에 뿌리를 내린 것인 줄 알았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다른 곳에 옮겨 주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작은 싹의 뿌리는 자판 사이 먼지가 아니라 그 아래 메인보드 쪽으로 뻗어 있었다. 그냥 뽑아버리려고 하다가 왠지 모를 호기심 때문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싹은 계속 자라기 시작했다. 당연히 물을 주지도 않았고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싹은 계속 자라 어느새 작은 나무의 모양으로 변해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기한 것은 노트북을 많이 사용할수록 그 자라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P2P 사이트에서 덩치가 큰 동영상을 다운로드하기라도 한다면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반대로 노트북이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나무는 시들시들 힘을 잃어가며 그 깜찍한 잎들을 키보드 위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백신 프로그램으로 치료하면 나무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나무는 마치 노트북과 한 몸인 것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무가 자랄수록 노트북의 성능이 엄청나게 좋아진 것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 노트북은 그저 웹서핑이나 문서 작업, 낮은 수준의 그래픽 작업용으로만 쓸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나무가 자란 이후부터는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거의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바뀌었다. 부팅에 걸리는 시간이 채 3초도 되지 않았다. 풀 HD 고화질 동영상의 필터 작업도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졌고, 실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최신 3D 온라인 게임은 모든 옵션을 켜 놓고도 콘솔 게임보다 더 훌륭한 그래픽과 실행 속도를 뽐내며 돌아갔다. 40GB 밖에 되지 않았던 하드디스크의 용량도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마치 화수분처럼 데이터를 저장하면 할수록 그 용량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저런 모습으로 나무가 자라다 보니 키보드를 사용할 수 없다거나 모니터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외장 키보드와 다른 모니터를 하나 더 구입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당연히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뻔했다. 혹시라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더 큰 문제였다. 노트북을, 아니 나무를 가만 내버려 두겠는가? 어쩔 수 없이 혼자 그 구조를 알아보려고 노트북 분해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노트북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키보드를 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이 상태로 두고 사용하기로 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니 오히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노트북이 공짜로 생긴 것이니까.
노트북에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두 개의 폴더가 있었다. 이전 주인이 만들어 놓은 폴더인 것 같았다. 하나는 사과 그림들이, 또 하나는 여러 편의 소설이 저장되어 있었다. 화가와 소설가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조합이긴 했지만 분명한 건 바로 앞 주인은 소설가였다는 것이다. 모든 소설들이 사과 그림들 - 참 많이도 그려 놓았다 - 보다 뒤에 저장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노트북에 그의 신상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작은 곳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출판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면 아직 등단하지 못한 신인인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설령 내가 그를 알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먼저 그를 찾아가 노트북을 되돌려 주는 일은 이제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두 폴더를 모두 삭제해 버렸다. 과감하게…….
그리고 오늘 아침 노트북은, 아니 나무는 깜찍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하나 맺었다. 이렇게 말이다.
그 어떤 기색도 없이 이렇게 나무는 사과 같은 열매를 맺어 놓은 것이다. 나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사실은 저 열매 때문이다.
열매를 보는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먹고 싶다. 저 빨갛고 탐스러운 열매를 먹고 싶다. 하지만 먹어도 될까? 조금 두렵기도 했다. 분명 내 눈 앞에서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실재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뻔히 내 눈 앞에서 1년간이나 자랐고 저렇게 새빨간 열매를 맺었지 않은가? 그리고 그냥 사과 비슷한 열매일 뿐이지 않은가? 그것도 아주 작은.
에덴에서 처음 선악과를 보게 된 이브의 마음이 이랬을까? 몇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1시간 전 나는 사과를 먹기로 결심했다.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이브가 되어 보고 싶었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인간이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나 힘들게 살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브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인간다운 욕망 아닌가 말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웃기지도 않는 고민을 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당신은 나의 노트북도, 저 나무도, 그리고 저 빨간 사과도 믿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별 상관없다. 비록 아담과 뱀은 없지만 나는 과감히 열매를 먹었다. 그리고 이곳에 왔다. 천사가 와서 쫓아낸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곳에 왔다.
어디? 정확하게는 나도 모른다. 이곳은 빛으로 가득한 곳이다. 아마 당신의 세상에서 말하는 사이버 공간 어디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글과 그림은 내가 원고지 위에 쓴 글이거나 키보드 자판을 통하여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지로 쓴 글이고, 나의 욕망으로 만들어 낸 그림이다. 믿지 못하겠다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는 있다. 지금 당신의 그 무슨 단말기를 켜 보라. 그리고 어떤 네트워크에든 접속해 보라. 그러면 그것이 데스크톱이든 노트북이든 스마트폰이든 당신의 모니터는 수많은 텍스트와 그림을 보여 줄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그곳에 있는 수많은 언어와 그림들 모든 것 하나하나가 누군가 어떤 인. 간. 들. 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가? 그것들 중에는 분명 주인도 없이 이루어진 것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의 것이냐고? 그것은 나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이 글과 그림은 당신들의 현실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의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 나는 에덴에서 유배된, 아니 당신들의 지상에서 유배된 이브이다. 그 열매를 먹은 원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 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노트북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혹시라도 나의 노트북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사과를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당신의 몫이라고. 그리고 당신들의 이브가 그랬듯이 이제부터 나와 나의 후손들이 만들어 갈 세상을 보라고. 당신들이 보기에 아름다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