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 생각의 나무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책의 첫 문장을 정말 좋아합니다.
간결하고 비장한 문체도 좋고, 책을 읽을 때 느껴지는 먹먹함도 좋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았던 책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저에게 최고의 책이 되어있었습니다.
지금은 며칠씩 출장을 갈 일이 생기면 이 책은 꼭 챙겨서 갑니다. 낯선 곳에서 이 책을 읽으면 저 단전 밑에 가라앉아 뿌옇게 흐려졌던 어떤 감정이 가슴 위로 불쑥 솟아오르더라고요.
다시 뭔가를 시작해 보자. 는 감정.
설렌다고 해야 하나, 두근거린다고 해야 하나. 어느샌가 책장 뒤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눈 내리는 마을이 담긴 워터돔을, 청소를 하다가 문득 발견해서 깨끗이 닦아놓고 내려다보는 그런 느낌입니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 이 책을 사서 읽었더라고요. 산 것도 읽은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도 읽어보면 나에게는 별 느낌이 없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 책을 읽을 때 나의 경험치와 나의 환경에 따라 다를 테니까요.
지금 나에게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책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는 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책에 대한 비평은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