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생명에 대해 발현되는 양심을 공평히 하는 법

by 뭘봐

최재천의 양심이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서 돌고래 훈련을 위해 제주도 물고기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있었다. 여기서 뭔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돌고래에게 잡아 먹히는 제주도 물고기는 자기가 대를 위해 희생하는 소라는 사실을 알까 우리 입장에서야 수십만 수백만 마리중 한 마리인 물고기이지만 그 물고기는 정말 수십만 마리의 같은 종의 물고기 중 하나로 환원가능한 존재란 말인가?


물고기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명이 인간에 의해 환원가능한 작은 생명으로 규정되리란 걸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동물권에 대해 항상 깊게 생각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난 답을 하기 어렵다

난 식용개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시에 난 육류를 소비한다. 돼지, 소, 닭등 다양한 생물을 공장식 도축을 통해 소비한다.

식용개와 다른 가축들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물었을 때 대부분 개는 가족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개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으로서의 개와 교감을 했기에 쌓인 서사가 우리 집의 개가 수많은 다른 개들로 환원불가능한 존재 즉 유일무이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종에 소속된 다른 개들에게서도 서사를 느끼고 연민을 느끼기가 쉽다. 식용개들이 우리 집 개처럼 산책하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서사를 개에게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개와 달리 돼지와 소, 닭 등과 우리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고 그들이 환원불가한 존재라는 경험을 하기가 어렵고 그에 따른 서사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솔직한 말로 삼겹살 1KG을 먹고 이러한 맛을 가진 돼지는 유일무이하고 환원불가능한 개별적 특성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는 게 가능할까. 내가 정말 애완돼지를 키워 그와 교감해 본 경험이 있는 게 아닌 이상 혹은 도축 현장의 끔찍함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 아닌 이상 포장되어 있는 상품을 보고 그러한 연민을 느끼기란 쉽지 않으리라.

나 또한 옥자라는 작품을 통해 옥자에게서 도축되는 가축의 서사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 이전까지는 도축되는 가축들에 대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양심이 발현되고 발전하는 범위는 말라비틀어진 이성의 범위가 아니라 마음이 동하는 서사의 감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우리의 양심과 공감이 발현되는 범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윤리적 도덕적 마음의 소리는 지식의 습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직간접적 서사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많은 서사를 접하고 경험하기를 고민하기를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서사를 바탕으로 개별적 존재가 모두 스스로에게 우주였음을 기억해줘야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가장 고등한 양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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