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점에서 바라본 나. 릭의 첫 번째 인터뷰.
지난번 인터뷰이 모집 시에 미리 신청을 받아 둔 팝아티스트 Rick 씨, 인터뷰를 하려 쪽지를 보내니 기억을 못하는 눈치였다. 프로필 사진은 그림이었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개인 일상 사진이 없었다. 인터뷰가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를 만나고 나니 헛된 우려였음을 깨달았다. 팝아티스트로서의 ‘일못(일 못하는 사람)’은 무엇일까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몇 마디로 소개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지극히 적은 부분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인데.. 일단 각설하고.. 흔히 하는 직업적인 면에서 자기 소개를 하자면, 시각디자인 전공 후 방송국 프리랜서 FD, 두 개의 온라인 게임회사에서 개발 PM(프로젝트 매니저)과 비주얼 디자이너, 게임 콘텐츠 기획자로 직장인으로 약 10년 정도 지내다 지금은 Rick Kim(릭킴)이라는 이름으로 팝아티스트 및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아, 참고로 영어는 잘 못한다. 이름만 릭킴이다. (웃음)
아니다! 나 일못 맞다! (웃음) 사실 일을 잘 하고 못하고는 타인의 기준도 있지만, 나 자신의 기준도 중요한 거 같다. 실제 직장인으로서의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일못도 이런 일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들어갔던 일터가 내가 정말 바라고 노력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데 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며 사는 생활"을 위해 생활비 버는 것을 주 목적으로 그나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좀 재미있고 자유로운 일을 찾다 보니 생각난 게 방송국이나 게임회사였고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직장일에 크게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사람들로부터 한량이라는 말 자주 들었다. 관리자 입장에선 골치 꺼리였을 거다. 일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 몰입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였으니. 그런데 나 역시도 나의 그런 상태에 그런 자괴감이 있었다. 일못 만이 느끼는 그런 자괴감. 그러다 회사를 나오면서 자유인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되었는데, 신기한 게 직장인이었을 때보다 덜 일못 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일못이냐 아니냐는 나 자신의 문제도 있지만, 자기가 일하는 일이나 일터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일못 유니언(페이스북 그룹)은 가입한지 꽤 되었지만, 거의 눈팅이었다. 미안하다. (웃음) 일못 유니언에 가입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현 직장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개인적으로 직장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남 같지 않다고 할까? 새해 달력을 받으면 제일 먼저 휴일이 얼마나되는지부터 확인한다.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주말이나 연휴를 생각하며 참고, 취미 생활이나 해외여행으로 잠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의 삶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고 시무룩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정신없는 일상에 휩쓸리는 패턴의 반복이다. 이것들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지 않을까? 일못은 그런 직장인들이 그들 각자의 일터에서의 개인적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내 과거 직장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일과 삶의 방법이 있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한다.
일단 스스로 나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유와 즐거움이 제일 좋다. 나에겐 월요병이 없다. 토요일, 일요일, 평일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요일 개념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 재미있어졌다. 이전 직장인 생활을 했던 게임회사라는 특성인가 싶기도 한데, 그때는 개인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세상이 매우 좁았다. 자유인이 된 이후에 팝아티스트나 기획자로 사회의 여러 분야를 경험하며, 세상은 매우 크고 그만큼 내가 할 일도 많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건 내 말버릇에서도 알 수 있는데, 전에 직장인이었을 때의 말버릇이 “아, 지겨워. 뭐 재미있는 거 없나”였다. 지금의 말버릇은 “재미있다. 신기하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그러고 보면 사실 직장인이 아닌 자유인으로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그것일 수도 있겠다. 사는 게 재미있어졌다는 것.
나는 인간을 하나의 세상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그 세상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그 세상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목소리, 말투, 행동, 글이 그렇고 그림 역시 그렇다. 내 그림에서 밝음을 느꼈다면 그건 내 세상에서의 밝음이 그림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닐까?
지금 하는 ‘작가놀이’의 첫 시작은 2013년 초에 시작한 SNS 기반의 아트 프로젝트인 “Project Face Drawing(프로젝트 페이스 드로잉)” 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직장인으로서 한계를 느낄 때, 그동안 미뤄왔던 그림 그리기부터 해보자는 마음에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그게 사람들의 호응으로 이어져 전시나 활동들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니. 나에게 있어서 작가놀이는 사람들과 나를 이어주는 소중한 매개체다. 이건 평생 할 것 같다.
음.. 거창한 모토는 없다. 다만 지금 현재에 충실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몇 년 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새해맞이를 병원 영안실에서 한 적이 있다. 간이 장례식 중 문득 영안실 벽 시계를 보니 새해 12시 15분이더라. 그 뒤 집으로 돌아가는 총알 택시 안에서 “내가 이러다 사고로 죽을 수도 있겠다.” 란 생각을 해봤다. 죽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내가 쌓아만 뒀던 아이디어들이 아깝더라. 언젠간 만들어야지 하며 쌓아두기만 했던 그 아이디어들 중에 하나도 세상에 못 꺼내보고 죽는 것은 너무 싫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를 기점으로 점차 직장인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역사라는 거대한 책장에 내가 만든 좋은 것들을 많이 꼽아둘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책장 속에는 앞서 그 누군가가 만들고 꼽아둔 많은 좋은 것들이 있다. 철학, 수학, 예술, 국가, 개념, 발명품, 도구 같은 것들 말이다. 돈이 많다면 그만큼 거기서 많은 것을 빼다 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마지막에 사람들에게 유용한 그 무엇도 못 넣고 죽는다면 그건 너무 허무하지 않나. 사람의 가치는 그 책장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빼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그 책장에 꼽아 넣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음.. 너무 뻔한 대답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호기심"이지 않을까? 스스로 내 안에는 뿌리 깊은 게으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궁금한 게 많고 심심한 것을 못 견디는 성향이 그것을 이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벌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때론 너무 많이 벌려놔서 문제지만 (웃음) 내가 재미있을 것 같은 것을 직관적으로 선택하고 호기심을 갖고 덤비다 보니 이런 경력들이 쌓이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내 삶의 경험들, 방송국에서 미디어에 대한 경험이나 게임 회사에 일했던 수많은 경험들이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선 경험들은 항상 그 다음 경험에 대한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어떤 일이라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호기심과 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호기심은 “현재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일터와 삶의 형태를 깨뜨리고 새롭게 만들 수는 없을까?”이다. 그것을 위해 현재 Freekey(프리키)라는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다. 한 마디로 새로운 개념의 일터를 만들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터란 이런 것이다. 주 5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 모든 직원은 그 위에 누군가 관리자가 있으며, 그에게 지시를 받고 따라야 한다. 대부분의 직원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참는 곳이다. 직원이 하는 모든 생산 활동에 따른 결과물은 회사 것이다. 좋은 결과물을 내면 인센티브를 받는다. 일을 해야 월급이 나오고 일을 멈추면 월급이 나오지 않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의 시간을 돈으로 교환받는다는 점에서 모든 직장인은 일용 노동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결국 좋건 싫건 회사에서 나와야 한다.
당연한 상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난 이게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를 나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런 일터의 형태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나를 포함해 11명의 사람들이 초기 멤버로 같이 진행 중에 있는데, 이런 과정을 “팝아티스트의 주식회사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조금씩 풀어갈 예정이다. 사실 큰 이야기다. 10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일터라는 개념과 그에 따른 삶의 모습을 바꾼다는 게 허황될 수도 있다. 잘 될 수도, 잘 안 될 수도 있다. 다만 난 그 과정을 이야기하고 알리는 것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도가 실패하고 다른 사람의 시도가 성공해도 된다. 우리가 그에 따르면 되는 거니까. 개인적으로 현재 일어나는 많은 사회 문제들은 20세기 방식의 일터 개념이 이제 유통기한을 넘겨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도 느끼고 있지만, 이젠 정말 새로운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직장이란 내 인생의 종착역까지 뻗어있는 길 중간에서 운좋게 얻어 탔었고 잠시 머물다 내린 “기차” 같은 곳이었다. 타지 않았었다면 얻지 못했을 많은 과분한 것을 얻었지만, 오랫동안 내 두 다리로 걷지 않았기에 그만큼 내려서 걸어야 했을 때는 힘들기도 했다. 음.. 사실 지금도 힘들다. (웃음)
직장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먼저 직장은 자기 인생 목표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은 단순한 돈,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신중해야 한다. 올바른 직장은 내 꿈을 위한 커리어와 관련된 지식, 자원을 부스트업 해주는 곳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직장은 “반드시” 자기 인생의 장기적 목표점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두 번째, 직장은 수단이 되어야 하지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것 같다. IMF사태 이후, 많은 한국 직장인들이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 “직장은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는 것. 수단과 목적을 헷갈리면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직장이라는 기차가 내 것이 아닌 이상 거기에 올라탄 상태로 종착역까지 갈 수는 없다. 서른 살이든 정년이든,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 반드시 내려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생각은 직장이라는 기차는 공짜가 아니라는 거다. 모두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이라는 꽤 비싼 티켓값을 치르며 탑승하고 있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차장(회사 오너)에게 너무 미안해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애착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우리가 그 값을 치르지 못할 때가 오면 차장은 우리에게 내리라고 이야기할 것이고, 우리는 좋건 싫건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자각하고 좀 더 당당하고 용감했으면 좋겠다. 모든 직장인들은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기차에 있을 동안 너무 기차 일에만 틀어박히지 말고 창문으로 바깥도 살피고 제자리 걷기라도 하며 내릴 준비를 미리미리 했으면 좋겠다. 그럼, 나중에 내려서 걸을 때, 조금은 덜 힘들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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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일 일요일 오후 어느 카페에서.
인터뷰이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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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2ㅣ주간경향 1128호 (Lin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