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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킴 Rickkim Jun 25. 2020

우리는 왜 에세이를 써야 할까.

에세이 책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을 읽고


요 몇 달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나의 정신없는 삶에 일조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 '소설 쓰고 있네'라는 나름 웃긴 제목의 앞글자만 따서 <소쓰있>이라는 오디오 드라마와 팟캐스트로 토크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특히 토크쇼에서는 그때그때 맞는 게스트를 초대해서 소개할 오디오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날은 오디오 드라마 3편 중 1편을 쓴 "김바롬" 작가를 게스트로 초대해서 토크쇼 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소쓰있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사진으로만 한번 봤던 그는 내가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밝고 유쾌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거 제가 쓴 책이에요. 제가 명함이 없어서 대신 이 책을 드릴게요."


그는 팟캐스트 녹음 시작 전에 주섬주섬 책을 꺼내어 내밀었다.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라는 제목의 에세이 책이었다. 표지가 귀여웠다. 난 사실 시나 소설, 에세이 장르를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고맙다고 잘 읽어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내가 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그와 토크쇼를 하면서 그가 가진 이야기가 궁금해져서였고, 또한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였다. 결국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에세이 책이 되었다.


내가 읽었던 이 책의 프롤로그 전문을 올린다. 김바롬 작가에게는 미리 말하고 허락을 구했다.




대체 뭐가 그리 억울했을까


우리 아버지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평소엔 그럭저럭 정상인에 가까웠지만, 술만 마시면 악마가 돼서 온 집안을 뒤집어놨죠. 어머니가 이가 부러지도록 맞는 동안 전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혀서 책을 읽었어요. 필사적으로 읽었죠.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밖에서 일어나는 악다구니가 들리고, 또 상처 받을 테니까.


전 남들처럼 지식을 추구하거나 문학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도망치기 위해 독서 습관을 가졌어요. 더 나이가 들면서 가지게 된 작가의 꿈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글 쓰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을 변명하고 회피하기 위해 애써 가졌던 꿈인 거죠.


사회복무요원(일명 공익)을 끝내고 바로 집을 나왔어요. 여전한 아버지도 싫고, 이혼할 용기조차 없어 매일 당하고만 사는 어머니까지 괜스레 원망스러웠죠. 당장은 글 쓴다고 생활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취직해야 하는데 무명 대학 중퇴자를 써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렇지만 사람이 일주일 굶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또 그 지경이 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후로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별의별 일을 다 했어요. 편의점, 백화점, 시청, 식당 등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부터 조선 시대 군복 입고 행진도 하고, 행사장에 의자를 혼자 천 개씩 깔고… 최근까진 호주에 있었어요. 별다를 건 없었죠. 그곳에서도 청소, 공사판, 세차장, 농장, 식당, 공장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왔어요.


서른이 되도록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젠가 글 써서 먹고살겠다는 꿈 덕분이었어요. 내가 미처 깨닫지도 못할 만큼 느린 속도지만, 꿈을 이룰 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었죠. 아무 근거도 없이 말이에요. 그게 그냥 허황한 희망이란 걸 바로 어젯밤에 깨달았어요. 정확히는 이제야 인정하게 된 거죠.


호주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오갈 데가 없어서 일단은 빈집이었던 아버지 집에 들어갔어요. 비만 오면 물이 새는 곳이었는데, 어젯밤에 또 한 번 물이 터졌어요. 한참 물을 퍼내다 보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더라고요. 이게 내 현재 모습이구나. 자다 말고 속옷 바람에 빗물을 퍼내는 모습이 내 인생의 요약이구나. 이게 글 쓰겠다고 깝죽거리며 살았던 지난 허송세월의 결산이구나 싶었죠.


전 그저 일용직을 전전하며 미래 없이 사는 인생을 변명하고 회피하기 위해 뻔뻔하게 작가 지망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사실을 깨닫고 그냥 다 끝내자고 마음먹었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도망치기로 했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밤새 망설이기만 했어요.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었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밤에도 끝까지 눈물을 흘리진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의사는 이따금 “그래요…” 하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서른을 넘긴 남자가 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에도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 적절한 직업적 무심함에 오히려 안심이 됐다. 나는 마지막 망설임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울어 재꼈다.


“선생님, 전 너무 억울해요. 죽고 싶은데,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겠어요. 억울해요.”


그때 차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의사는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억울함이라는 건 어떤 의미죠?”


순간, 터치형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순식간에 눈물이 그쳤다.


물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내 증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뜻인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게는 ‘대체 너에게 억울할 게 뭐가 있느냐?’는 호통으로 들렸다. 난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에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벌어진 입으로 간신히 “아…” 하는 탄식 소리만 내면서 의사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질문만이 수만 마리의 파리 떼처럼 난동을 피우며 요란하게 두개골 안쪽을 두드려댔다.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거지?’




그의 에세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전에는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넋두리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었던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에 대해 그것이 가진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생을 비유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난 인생이 강 하류의 지층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시간이라는 강물 속을 이리저리 떠도는 부유물 같이, 우리가 살아가며 순간순간 벌어지는 일들과 셀 수도 없이 많은느낌과 생각들은 하루하루를 지날 때마다 강바닥에 쌓이는 모래처럼 차곡차곡 쌓여간다. "아, 오늘 정말 재미있었는데!"라는 즐거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 서서히 퇴색되어 가는 것은 아마도 그 위로 끊임없이 쌓여가는 시간의 모래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시간의 강물 속에서 오래된 과거의 일을 다시 꺼내보는 것은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이미 오래전에 겹겹이 쌓여 저 아래 묻혀버린 모래 한 줌을 발견하기 위해서 굳이 강바닥을 뒤집고 파헤치는 일과도 같다. 그나마 진정되어 있던 깨끗했던 강 속은 과거의 모래들로 금세 뿌연 흙탕물이 되어 눈 앞을 뒤덮고 숨을 막히게 한다.


이 일의 가장 힘든 점은 그렇게 이미 지나간 '과거'라는 흙바닥을 뒤지는 중에도 '현재'라는 새로운 모래들은 쉬지 않고 내 위로 쌓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의 모래들이 뒤섞여 나는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지나간 것은 그냥 지나간 대로 두어라."라는 어른들이 했던 말의 숨은 속 뜻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주 자신의 강바닥을 뒤집고 파헤친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속에는 분명 아프고 잊고 싶은 순간들도 있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헤엄쳐 갈 힘을 준다.


난 우리가 에세이를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시간의 강바닥을 뒤집고 파헤쳐 겨우 발견한 소중한 과거의 모래 한 줌을 글이라는 도구를 써서 보관함에 담아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우리가 힘들게 찾은 그 모래는 어느새 내 손가락 사이에서 모두 빠져나가 버려 다시 강바닥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럼 다시 그 모래를 만나기 위해서 매번 강바닥을 힘들게 뒤져야 할 것이며, 그 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 시간의 모래는 끊이지 않고 쌓여갈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흘러간 모든 모래들을 다 담아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만일 내게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나 사건, 기억이나 감정들이 있다면 글로 갈무리를 하고 에세이라는 보관함에 담아봐야겠다. 가능하면 하루가 가기 전에, 적어도 너무 늦지 않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쌓여가는 시간의 모래들이 너무 많이 쌓이기 전에 말이다.


:

2020년 6월 25일 밤

광명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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